경제·금융

28년간 골수만 연구한 ‘골수분자’/가톨릭 의대 김춘추 교수

◎인턴시절 국내 첫 신장이식에 참여후 도전/수술땐 지난번 성공한 넥타이 매 ‘무사’ 기원/틈틈이 써온 시모아 내달 시집내는 ‘문학도’서울경제신문과 한국과학재단이 공동 제정한 「이달의 과학기술자상」 제2회 수상자로 김춘추 가톨릭의대 교수(여의도 성모병원 가톨릭 골수이식센터 진료부장)가 선정됐다. 김교수는 「난치성 혈액종양 질환을 치료하기 위한 다양한 골수 이식 기법」을 개발한 공로를 인정받아 이 상을 수상하게 됐다. 그의 연구활동과 연구세계를 소개한다.<편집자주> 김춘추 박사는 지난 69년 가톨릭대학 성모병원에 발을 들여놓은 뒤 28년간 골수만 집중적으로 연구한 골수분자다. 그가 골수분자가 된 배경은 간단하다. 그리스 신화에서 아폴로의 아들 아스클레피오스는 고대 그리스의 의사들이 받드는 「의술의 신」이다. 전두환 대통령의 주치의로 지난 83년 아웅산 사태에서 죽은 민병석 박사는 김박사에게 아스클레피오스보다 더한 의미를 지닌 「의학의 신」이었다. 지난 69년 가톨릭의대에 근무하던 민교수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신장 이식 수술에 성공하여 이식 수술에서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때 민교수는 당시 인턴이었던 김박사에게 물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골수 이식이 가능할까』 당시 골수 이식은 곧 백혈병 치료를 의미했고 불치병으로 알려진 백혈병을 치료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당시 미친 짓으로 여기던 분위기였다. 그러나 김교수의 답은 간단했다. 『Why not, sir』 이 한마디가 그를 골수분자로 만들었다. 존경하는 은사에 대한 「순간적인 답변」 한마디가 그의 인생을 결정한 것이다. 『이번 수상은 저 개인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그동안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임상 의학자에 대한 것입니다. 의학분야에서도 이론 연구가 아닌 임상 연구에 상을 주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제가 뛰어나서가 아니라 그간 소홀했던 임상분야를 대표해서 상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겠습니다』 백혈병과 같은 혈액종양 질환은 대부분 수십만명당 1명의 확률로 걸리는 희귀한 병이다. 또 골수 이식법이 개발되기 전까지 한번 걸리면 100% 죽어야 하는 질병이다. 『암은 초기에 발견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치료가 불가능합니다. 암 가운데 초기에 발견하지 못하더라도 치료할 수 있는 것은 혈액종양계통입니다. 골수 이식이 「암의 완치」라는 복음을 가져온 것입니다』 가톨릭의대 학생들에게 김교수는 「CCK」로 통한다. 김교수의 강의에서 학생들은 지금 듣는 것이 의학 강의인지 문학 강의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김교수는 문학적인 표현으로 의학 강의를 하기 때문이다. 『가톨릭의대에 입학한 뒤에도 의학보다 문학을 하고 싶었습니다. 교수로서 강단에 섰을때 딱딱한 강의보다 지식으로서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해 애쓰다 보면 저절로 문학적인 표현을 하게 됩니다』 김박사는 그간 써둔 시 1백50여편을 모아 오는 6월 첫 시집 「요셉 병동」을 발간할 예정이다. 이 시집은 생명을 다루는 의사가 겪는 희망과 좌절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김박사는 또 MBC의 「인간시대」와 KBS의 「소망」 등 병원 관련 방송 프로그램에 직접 출연하거나 방송 줄거리를 작성하여 프로그램 제작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시의 언어와 과학의 언어는 다릅니다. 특히 「피」나 「골수」와 같은 단어는 시와 과학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피」와 「골수」는 문학에서 각각 「생명」과 「본질」를 상징한다. 그러나 의학에서 「피」와 「골수」는 각각 「동물의 몸에서 산소를 나르는 붉은 액체」와 「피를 만드는 물질」일 뿐이다. 『피와 골수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헌혈은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액체를 나누어주는 것이며 골수 기증은 상대방에게 「피를 만드는 공장」을 제공하는 것일 뿐입니다』 김박사는 「피 속에 기가 담겨있다」거나 「골수는 뇌」라는 잘못된 인식 때문에 헌혈과 골수 이식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다고 털어놓는다. 성덕바우만 덕분에 골수 이식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 기증자를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문학과 과학의 경계선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김교수는 생명의 경계선에 대해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 그는 항상 머리를 잘 빚지 않고 텁수룩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골수 이식 환자를 수술하러 들어갈 때는 항상 지난번 성공한 수술에서 맸던 넥타이를 매야 성공한다는 묘한 징크스를 갖고 있다.<허두영> ◎골수 이식이란/피만드는 물질이 골수… 척추·골반에 많아/백혈구 이상증식 억제 「좋은 피」 제조 역할 피는 몸 속 어디서 만들어지는 것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피는 심장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지만 심장은 피를 온몸으로 내보내는 펌프에 불과하다. 피는 거의 대부분 뼈에서 만들어진다. 뼈에서 피를 만드는 물질(조혈모세포)이 바로 골수다. 조혈모세포는 주로 머리뼈·척추·골반 등 크고 넓은 뼈 속에 들어있으며 말초 혈액이나 태아의 간에도 들어 있다. 영화 「라스트 콘서트」 때문에 낭만적인 병으로 인식되는 백혈병은 피 속의 백혈구가 이상 증식하여 생기는 일종의 혈구암이다. 백혈구가 과다 증식하는 것은 조혈모세포에 이상이 생겼기 때문이다. 따라서 백혈병을 치료하려면 결함있는 조혈모세포를 제거하고 건강한 조혈모세포를 넣어주어야 한다. 백혈병처럼 혈액과 관련된 질병은 몸 속에 들어있는 「나쁜 피」를 없애고 신선한 「좋은 피」를 제공해야 치료할 수 있다. 따라서 골수 이식(조혈모세포 이식)은 불량품(피)을 만드는 공장을 아예 폐쇄시켜 버리고 좋은 제품을 만드는 공장을 새로 짓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헌혈은 부족한 피를 단순히 보충하는 것이지만 골수 이식은 아예 「피를 만드는 공장」을 건설하는 것이다. 따라서 골수 이식은 각종 혈액종양 질환을 치료하는데 필수적인 방법이다. 헌혈할때 혈액형을 따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골수를 이식할 때도 적합성을 따져야 한다. 골수 이식은 혈액형은 따질 필요가 없지만 생착 등 다른 조건이 많아 이식 가능한 골수를 찾는 것은 매우 어렵다. 지난 95년 성덕바우만군에게 이식할 골수를 찾기 어려웠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미국에서 그에게 적합한 골수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건강한 골수를 미리 채취하여 냉동 보관한 뒤 다시 이식하는 자가 이식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다음이 부모나 형제의 골수를 이식하는 동종 이식, 최악의 경우가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는 비혈연간 이식이다. 골수를 이식한 환자는 가끔 혈액형이 달라지거나 성유전자가 바뀌기도 한다. 혈액형이 A형인 환자가 B형인 기증자로부터 골수를 이식받으면 B형으로 바뀐다. 또 남성인 환자가 여동생으로부터 골수를 이식받으면 Y염색체가 없어지고 X염색체만 남아 혈액으로는 여성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의학적으로 환자의 정상 생활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허두영> ◎연구업적/83년 급성림프 백혈병에/동종 골수이식 국내 첫 성공/부자간·비혈연간 등 잇단 개가/조혈모세포 500건 이식 발판마련 김춘추 박사의 연구업적은 모두 「국내 처음」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다. 이 「국내 처음」은 당시까지 불치로 알려진 그 병을 앓던 환자들에게는 「생명의 빛」이기도 하다. 김박사는 지난 83년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환자에 대한 동종 골수 이식에 성공하여 골수 이식의 복음을 국내에 널리 알렸고 이듬해 악성 림프종 환자에 대한 자가 골수 이식에 성공했다. 지난 95년에는 ▲급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에 대한 부자간 골수 이식 ▲골수 이형성 증후군 환자에 대한 조직적합 항원 불일치 골수 이식 ▲만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에 대한 비혈연간 골수 이식에서 잇달아 개가를 올렸다. 또 지난해 유방암 환자에 대한 CD34 항원 양성 조혈모세포 이식과 만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에 대한 부녀간 골수 이식에 이어 올해초 전신성 홍반성 낭창 환자에 대한 자가 면역질환 동종 골수 이식에 성공했다. 이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가톨릭 골수이식센터가 지난 84년 국제골수이식등록센터(IBMTR)로부터 정식 인가를 받고 김교수는 IBMTR의 이사, IBMTR 자문위원회 고문, 아시아·태평양 골수이식학회 사무총장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박사는 또 재생 불량성 빈혈의 한국형 면역조절요법을 개발하여 국제적인 교과서에 실리기도 하고 급성 골수성 백혈병에 대한 새로운 항암 화학요법을 시도했으며 만성 골수성 백혈병에 대한 인터페론 치료요법을 정립했다. 김박사는 지금까지 혈액 종양과 골수 이식 분야에서 모두 1백30여편의 논문을 발표하고 여의도 성모병원에서만도 연간 1백50∼1백80건의 각종 조혈모세포 이식을 수행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이에 따라 지난 83년 첫 골수 이식 성공 이래 지난 2월말까지 10여가지의 방법으로 모두 5백건의 조혈모세포 이식을 가능하게 했다. 김박사는 현재 골수 이식에서 일어나는 거부반응을 줄이기 위해 조혈모세포를 대량 이식하는 방법과 면역증강물질로 환자의 면역성을 높여 재발을 방지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허두영> ◎연구 뒷얘기/집팔아 연구활동 강행/결혼초엔 처가살이 신세/실험용으로 애완견 훔쳐/장모 “개도둑” 별명 붙여줘 『김서방, 혹시 우리 쫑 못봤나?』 장모님은 밤늦은 연구로 아침 늦게서야 부시시 눈을 비비고 일어나는 김춘추 박사에게 물었다. 『어제까지 여기 잘 있었는데…』 김박사는 뜨끔했다. 장모님이 귀여워하시는 「쫑」이 어제 밤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자기 밖에 없다. 그런데 장모님은 어떻게 알고 사위를 개도둑으로 지목하고 있는 것일까. 김박사는 보신탕을 먹지 않는다. 골수 이식 실험용으로 1백여마리의 개를 희생시킨데 대한 일종의 「죄갚음」이다. 골수 이식 실험에 쥐(기니아픽)는 신뢰성이 낮고 원숭이는 구하기 어려워 값이 비싸다. 개가 가장 적합한 대상이다. 그런데 연구비가 모자라 실험용으로 확보해둔 개가 바닥났다. 당장 개를 구하지 못하면 몇달간에 걸친 실험이 물거품이 된다. 김박사의 결론은 간단했다. 급한 김에 가장 구하기 쉬운 처가의 개를 훔쳐 실험실로 끌고 갔다. 물론 아내에게 미리 귀띔해두고 저지른 범죄(?)지만 처가에서 이 사건은 두고두고 김박사에게 「개도둑」이라는 새로운 호칭을 달아주었다. 김박사가 6년동안 「처가살이」를 하게 된 배경도 간단치 않다. 당시 40을 넘은 나이에, 다들 부러워하는 「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데도 김박사는 「머리 둘 곳조차 없어」 처가 신세를 질 수 밖에 없었다. 지난 81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UCLA) 골수이식센터에서 임상 골수 이식과 이식 면역학을 연구하기 위해 유학을 떠나는 김박사에게 생활비로 동원할 수 있는 돈이 거의 없었다. 김박사의 결론은 간단했다. 「집을 판다.」 결혼한 뒤 간신히 장만한 군포의 아파트는 「쫑」이 사라지듯 어느날 갑자기 없어졌다. 따라서 2년간의 유학을 마친 김박사가 돌아갈 곳은 서울 정릉에 있는 처가뿐이었다. 처가 식구는 모두 돌아온 김박사를 반갑게 맞았지만 아마 「쫑」은 그의 귀향을 반기지 않았을 것이다.<허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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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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