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내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4% 안팎으로 내놓은 14일 모건스탠리는 “내년에 한국경제가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이후 최대의 도전에 직면할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날 보고서를 발표한 LG경제연구원은 정부의 경제회생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2%대까지 성장률이 곤두박질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경제는 이제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형국이 됐다. 다만 한국은행과 민간기관들 모두 내년 경기를 ‘선저(低) 후고(高)’로 진단, 하반기께 숨통이 트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품어볼 뿐이다. KDI의 경제전망에서 우선 짚어볼 만한 대목은 정부가 앵무새처럼 되뇌어왔던 5% 성장률이 의미 없는 수치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KDI는 내년 성장률을 상반기 3.2%, 하반기 4.7%로 예상했다.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3.95%가 나온다. 반올림해 4%란 수치가 나온 셈이다. KDI는 더욱이 4조~5조원 규모에 이르는 뉴딜정책을 반영해 이 같은 수치를 내놓았다. 재원부족으로 계획이 실행되지 않으며 3% 중반까지 떨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 같은 전망은 묘하게도 이날 모건스탠리가 내놓은 3.8%라는 전망과도 맞아떨어진다. 모건스탠리의 아ㆍ태담당 이코노미스트인 샤론 램과 앤디 시에는 “한국에서는 여전히 내수회복의 신호가 없으며 최근 경제지표들은 심지어 하락세로 기울어진 것으로 보인다”며 “내수회복이 향후 수출둔화 때 경제에 쿠션(안전판) 노릇을 하지 못한다면 한국은 내년에 침체에 빠져들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점에서 KDI가 제시한 내년 민간소비증가율 2.5%는 주목할 만하다.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최근 예상한 4%를 훨씬 밑도는 규모다. 국민연금 등 사회부담금이 지난 91~97년 연평균 29.6% 증가에서 99~2002년에는 한해 평균 46%씩이나 늘어나며 “연금이 소비여력을 떨어뜨리는 존재”가 되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내수부양을 위한 정부의 경제대책이 헝클어지고 유가와 환율여건이 악화되면 2%대로 내려앉을 가능성이 있다는 LG경제연구원의 분석에 신뢰도를 부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경제회복 여력도 고갈될 것으로 우려된다. 당장 3년 연속 정부가 목표로 한 잠재성장률 5%에 못 미치면서 일자리창출계획이 빗나가고 있다. 1%포인트를 일자리 8만~10만개로 환산할 경우 내년 정부의 목표치인 40만개 달성은 요원해 보인다. 성장잠재력도 이미 4%대로 내려앉은 것으로 관측된다. KDI에 따르면 자본과 노동 등 요소투입에 의한 성장기여도는 90년대 5.0~5.5%에서 2003~2012년에는 3% 내외로 크게 떨어졌다. 우리나라의 연평균 생산성증가율은 1.5% 내외로 추정된다. 성장잠재력이 4.5% 수준으로 하락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잠재성장률 하락은 ‘소득감소→소비감소→투자위축→고용감소’의 악순환으로 연결된다. 때문에 정부로서는 5% 성장론이 버릴 수 없는 카드다. 박병원 재경부 차관보는 “정부가 나서서 목표 성장률을 낮출 수는 없다”며 “이달 말 내놓을 내년 경제운용방향에서도 5%를 맞출 수 있는 방도를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KDI의 분석대로라면 정부가 5% 성장의 핵심 열쇠로 내세워왔던 뉴딜정책, 즉 종합투자계획만으로는 부족하다. ‘뉴딜+∝’가 필요한 것이다. 모건스탠리가 언급한 추가 콜금리 인하, KDI가 밝힌 확장적 재정정책 등 ‘전방위 경기부양’은 이제 우리 경제의 필수조건으로 등장했다. 김영기기자 young@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