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판매노조원 30~40%가 '012부대' ['노사평화의 싹' 움튼다] '당신들의 천국' 벗어나야그래도 실적 부진자 교육 금지 등 '3불 정책' 엄격 관련기사 냉혹한 시장을 다시 보라 비싼 수업료는 '이제 그만" 소득 3만弗시대의 열쇠 기아차 공장에서는 얼마 전 노조간부들의 차량이 사라져버렸다. 노조간부들이 공장 밖 사원주차장에 주차하고 회사로 들어오기로 결정한 이후에 벌어진 풍경이다. 작업현장에서도 노조간부들을 손쉽게 만날 수 있다. 근무시간에 열리던 노조 관련 회의가 사라진 덕택이다. 노동운동이 기존에 관행처럼 누려오던 '특혜'를 벗어 던지면서 희망의 지평을 열어가는 모습이다. 조합원 L씨는 "이제야 노조가 제대로 돌아가는 것 같다"며 "일부 노조간부들을 위한 노조가 아니라 조합원 전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노조가 진정한 노조"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에선 여전히'그들만의 천국'이 구석구석에 똬리를 틀고 있다. 노동운동의 전위부대로 손꼽히는 현대차 일선지점의 상황은 대표적인 사례다. "노조의 그늘 아래 월급과 복리혜택만 챙기는 이른바'012부대'가 전체 판매노조원의 30~40%에 달합니다. 영업사원이 한달에 자동차 1~2대 정도만 팔고 200만원이 넘는 월급은 꼬박꼬박 받는다면 회사의 앞날이 어떻겠습니까."(현대차 판매지점장 K씨) K씨가 말하는 012부대란 한달 동안 판매실적이 전혀 없거나 1~2대에 불과한 영업사원. 말도 안되는 소리 같지만 상황이 다급해도 지점장은 영업사원에게 함부로 판매를 독려하지 못한다. 현대차 노조는 어떤 상황이라도 상사가 ▦퇴사를 권고하거나 ▦실적과 관련한 개인 면담 ▦실적 부진자 교육 등을 실시해서는 안된다는'3불 정책'을 갖고 있다. 내수시장에서 수입차들이 약진하는 배경에는 현대차의 이 같은 약점도 커다란 요소다. ◇'당신들의 천국' 포기해야 산다=국내 일부 노동조합이 이처럼 '그들만의 천국'에 취해 있는 사이 '노사관계 선진국'인 유럽의 노조는 발 빠르게 변하고 있다. 폴크스바겐은 최근 독일 금속노조와 임금인상 없이 근로시간을 5시간 정도 늘리기로 했고 아우디도 벨기에 브뤼셀 공장 노조와 근로시간 3시간 연장에 합의했다. 우리로서는 감히 상상하기도 힘든 노사합의 내용이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었을까. 아우디코리아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임금인상을 하지 않은 채 근로시간 연장에 합의한 것은 노조가 회사에 준 선물"이라며 "반면 회사는 노조에게 고용안정이라는 더 큰 선물을 줬다"고 설명한다. 독일은 높은 인건비를 견디지 못해 최근 생산기지를 동유럽이나 북유럽으로 옮기고 있으며 심지어 중국으로 옮기는 기업도 숱하게 나오고 있다. 독일 본사의 생산기능을 최소화시킨 바스프의 한 임원은 "독일 기업들이 왜 독일을 떠나 동유럽이나 중국으로 옮겨가는지 (한국 기업들도) 냉정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경영진 열린 마인드 "또 다른 열쇠"=금호고속 노조 관계자들은 창사 이래 매일 아침 최고경영진과 함께 첫차를 떠나보낸 후 조찬 회동을 갖는다. 대화에는 주요 뉴스부터 회사 이야기, 직원들 복지 문제 등 모든 현안들이 거침없이 올라오고 즉석에서 해결방안까지 나오기도 한다. 노사가 한 몸이라는 전통 아래 거리낌 없는 대화를 통해 서로의 이해를 넓히고 쓸데없는 오해를 줄이겠다는 취지에서다. 이처럼 탄탄한 노사관계는 중국 1위의 운송기업이라는 영예를 금호고속에 안겨줬다. 화섬업체인 휴비스 노조는 올 들어 경영진에게 아무 교섭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임금을 동결하자고 먼저 제안하는 용단을 내렸다. 박주완 전주공장 노조위원장은"중국의 거센 추격 등 갈수록 거세지는 경쟁구도에서 노조에서도 뭔가 해야 된다는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됐다"며 배경을 설명했다. 노조가 상투적인 강경투쟁을 버리고 회사를 먼저 걱정할 때 어떤 결과를 보일지는 분명하다. 한때 수익 악화에 시달리기도 했던 휴비스는 이 같은 노조의 결단 덕택에 탄탄한 흑자기조로 돌아서 업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노조는 물론 경영진 역시 인내심을 갖고 성실하게 약속을 이행하고 임금구조개선 노력 등을 통해 신뢰구축에 나설 때 선진 노사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다.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현대자동차를 제외한 LG 등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모두 상생의 노사관계를 확립한 것은 여러 가지로 시사하는 바가 많다"며 "노조와 함께 사용자도 노동운동의 방향을 바꾸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고 충고했다. ● 아우디 노조의 선택 지난 92년 독일 잉골슈타트의 아우디 노조사무실. 노조지도부는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경영진이 “회사의 경영사정이 어렵다. 감원은 하지 않겠지만 임금을 20% 삭감하고 회사경영이 정상화되면 20%를 돌려주겠다”는 제안을 해왔던 것. 몇 시간에 걸친 토론 끝에 노조는 이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회사의 어려운 사정을 잘 알기에 제안을 받아들이고 생산성 향상에 노력하기로 했다. 아우디 경영진은 94년 이후 경영이 호전되자 삭감했던 20%의 임금을 3년에 걸쳐 노동자들에게 돌려줬다. 위기를 넘긴 아우디는 이후 12년 연속 성장하며 고급차 시장의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경영진은 노동자들의 노고에 화답해 2005년부터 영업이익의 10%를 노동자들에게 돌려주는 ‘확대직원이익분배제’를 시행했다. 아우디 임직원 4만5,000여명은 지난해 총 2,000만유로가량을 받았으며 올해는 지난해보다 4배나 많은 8,150만유로를 분배받을 예정이다. 아우디의 노사관계는 노사간 신뢰를 구축하려면 어떤 조건들이 갖춰져야 하며 굳건한 신뢰가 궁극적으로 가져오는 혜택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노조는 회사의 경쟁력 강화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경영진은 임직원들과의 약속을 철저히 이행해야 한다. 또한 이런 노력을 통해 얻어진 과실은 사용자와 노동자가 함께 공유해야 한다. 트레버 힐 아우디코리아 사장은“대립으로 치닫는 노사관계는 결국 노동자ㆍ기업 모두에 손해”라며 “매년 노사관계 때문에 수천억원이 넘는 손실이 발생한다면 한국 자동차 기업들은 북유럽이나 중국으로 생산기지 이전을 검토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협력업체가 본 대기업 노조 "우린 공장 잠깐만 멈춰도 월급 걱정부터 하는데… 그들은 별세계에 사는 듯" "완성차 노조는 우리와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 같아요." 현대차 노조의 부분적인 파업 철회소식이 전해진 25일 현대차 협력회사의 한 근로자는 기자와 만나 이렇게 쓴소리를 내뱉었다. 협력사 입장에서는 단 몇시간 공장을 멈춰도 당장 월급 걱정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데 대기업들은 단지 파업시간을 조금 줄인다고 생색을 내는 모습을 아무래도 이해할 수 없다는 얘기다.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이처럼 대기업 노조의 이기주의에 적지않은 상처를 받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 영세한 협력업체들은 작은 외풍에도 회사의 존폐가 기로에 놓이기 때문에 짧게는 수일 길게는 수십일간 파업이 지속되면 기업 생존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최근 기아자동차 공장에서 근무했던 한 협력업체 근로자는"화장실도 제대로 못 쓰게 하고 점심식사도 언제나 기아차 조합원들이 먼저 먹고 나서야 협력업체 직원들이 먹을 수 있었다"며"같은 노동자인데 이렇게 차별하면서 무슨 노동운동을 한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협력회사의 한 근로자는"대기업 노조의 파업으로 내 일터가 위기에 처하는 상황을 그대로 보고만 있자니 울화가 치민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중소기업 경영자들도 대기업 노조가 조금이라도 협력사 근로자들을 생각하면 좋겠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영섭 현대ㆍ기아차협력회 회장은 완성차 노조에 대해 한마디로"외계인들이 와 있는 것 같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협력업체들은 비용절감을 통해 가격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정말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다"며 "자동차 산업 전체에 엄청난 고통과 손해를 입히는 파업을 매년 반복하고 있는 노조를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자동차 산업은 컨베이어 산업이기 때문에 공장이 멈추면 생산을 하지 못하고 그로 인한 손실은 완성차나 협력업체 모두에 영원히 복구되지 않는 손실이 된다"고 덧붙였다. 대기업 노조를 바라보는 협력업체들의 시각은 대부분 이 회장과 다르지 않다. 글로벌 경쟁체제에서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는 마당에 완성차 노조의 반복되는 파업으로 발생하는 비용을 협력업체가 감당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컨트롤 케이블을 GM대우에 공급하는 대동시스템의 이중아 사장은 "정말 해도 너무 한다"며 "엔저현상 때문에 국내 자동차 가격이 일본 자동차들에 비해 20~30% 정도 떨어졌는데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이대로 가다가는 일본 자동차 기업들에 완전히 뒤처질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회장은 "법이 엄정하게 지켜지는 풍토를 단 3년만 만들어도 노사관계가 보다 안정적으로 정착될 것"이라며 "노조는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싸움을 지양하고, 사용자는 성실한 교섭을 진행하고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호소했다. /특별취재팀=정상범차장(팀장)·김성수·김호정·김민형·김상용기자 ssang@sed.co.kr 입력시간 : 2007/06/25 18: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