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후 돈 인출않고 예치땐 일정금리로 증가<br>'크레디트 라인' 도입해볼 만
우리나라 주택연금 상품은 미국의 공적보증 주택연금(HECMㆍHome Equity Conversion Mortgages)을 모델로 해서 만들어졌다.
따라서 여러 부분에서 유사하지만 커다란 차이가 있다. 바로 연금지급 방식의 유연성 여부가 가장 큰 차이다.
우리나라 주택연금은 사실상 평생지급 연금방식 하나뿐이다. 일시분 인출 한도가 일부 있지만 이는 초기 가입비용 충당 또는 비상시 이용하도록 제한돼 있다.
그러나 미국은 주택연금 가입자가 다양한 지급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평생지급 연금방식(tenure)을 선택할 수도 있고 아니면 대출한도를 전액 인출, 필요한 데 사용할 수도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대출한도에서 실제 돈을 인출하지 않고 가입 금융기관에 크레디트 라인으로 설정해두면 일정 금리(현재 6.29%)로 증가한다는 점이다. 이것을 ‘증가하는 크레디트 라인(Creditline Growth)’제도라고 한다.
더욱이 크레디트 라인 원금은 그대로 두고 늘어나는 부분만 매달 연금처럼 받을 수도 있는데 이 금액이 평생지급 연금방식의 월 지급액수와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가입자 입장에서는 월 지급액수만 약간 적게 받으면 언제라도 크레디트 라인 원금을 찾아 쓸 수 있어 가장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설명해보자.
미국 LA 오렌지카운티 어바인에 살고 있는 한인교포 A부부. 자식들은 모두 출가했고 갖고 있는 주택의 가치는 20만달러라고 가정하자. 부부 모두 1937년생으로 만 70세이다. A부부가 주택연금, 즉 HECM에 가입하면 얼마를 받을까.
현금 일시불로 찾을 수 있는 금액(대출한도의 100%)은 11만2,641달러이다. 이 부부가 살던 집에서 죽을 때까지 살면서 매달 받을 수 있는 연금(tenure 방식-고정금액) 액수는 월 721달러. 그런데 이 금액은 우리나라 주택연금처럼 고정금액이다. 인플레이션에 따라 장래 가치는 하락한다.
A부부가 크레디트 라인 방식으로 대출한도의 100%를 모두 찾으면 크레디트 라인 설정금액은 11만2,641달러이다. A부부가 이 금액을 찾지 않고 가입 금융기관에 그대로 두면 예금한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일정한 비율로 증가한다. 현재 연간 증가율은 6.29%다. 이 증가율은 미 연방정부 1년 만기 채권 이자율에 따라 변동한다. 따라서 5년 뒤에는 크레디트 라인 금액이 15만2,845달러로 늘고 10년 뒤에는 20만7,399달러가 된다(그림 참조).
그런데 A부부는 당장 생활비가 없어 매달 현금 수입이 있어야 한다고 가정하자. 그러나 죽을 때까지 종신연금 형식의 월 지급금을 받기는 꺼려한다. 매달 돈을 받지만 나중에 집까지 모두 날리고 자식들에게 돈 한푼 남기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종신연금 방식을 택하기는 싫었다. 받는 금액이 고정돼 있어 장래 가치가 하락하는 점도 염려됐다.
대신 크레디트 라인 방식을 선택하되 처음 설정금액은 그대로 두고 증가하는 부분(6.29%로 매년 늘어나는 부분)만 매달 연금 형식으로 받고자 했다.
그래서 계산해보니 매달 받을 수 있는 돈이 574달러였다. 종신연금 형식의 월 지급금은 721달러. 종신연금 방식보다 다소 적지만 A부부는 증가하는 크레디트 라인 방식을 택했다. 당장 월 574달러를 받을 수 있어서 좋았고 또 1년 뒤든, 5년 뒤든, 20년 뒤든 자신이 죽는다고 해도 크레디트 라인 원금 부분 11만2,641달러는 그대로 남아 있어 자식들에게 상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역모기지가 성공한 요인은 바로 이 때문이다. 노인들이 당장 필요로 하는 현금소득 수요를 충족시켜주면서 동시에 일정 현금을 남겨 유사시 상속, 병원비 등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한빈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교수는 “고령층 소비자들의 다양한 필요에 맞출 수 있도록 우리나라도 주택연금 지급방식을 보다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