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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이사갈 집 못구해 최대한 시간끌며 버텨
간혹 전세 물건 나오면 연차쓰고 바로 달려가야
집도 안보고 계약하기도
'차라리 집사자' 증가 속 월세 계약도 60% 넘어
"최근 전셋집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되면서 별일이 다 일어나고 있습니다. 만기가 돌아온 어떤 세입자들은 새로운 집을 보러 간다는 중개업자의 전화를 의도적으로 피하거나 집에 없다는 말을 반복합니다. 이사 갈 집을 구하지 못하다 보니 이런 식으로라도 시간을 끌기 위해서입니다." (서울 강동구 성내동 K공인 대표)
11일 서울경제신문이 서울에서 매매가 대비 전세가율이 90%대인 아파트 단지를 둘러본 결과 전세난은 상상을 초월했다. 집을 보러 온 사람에게 세입자가 문을 열어주지 않는가 하면 집을 보지도 않고 계약하는 경우도 더욱 많아지고 있다. 또 100만원 이상의 보증부 월세도 늘고 있으며 월세 계약도 60%를 넘어섰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전세가율 90%대 아파트가 제법 몰려 있는 서울 강동구 아파트 임대차시장은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 지역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은 이미 꼭지까지 치솟았다는 평가다. 천호동 현대아파트 44㎡(이하 전용면적)의 전세가는 2억원대로 매매가의 90% 수준이다. 성내동 청구아파트는 59㎡ 역시 전세가율이 89% 수준이며 선광아파트 84㎡는 전세가 비율이 95%대에 이른다.
최근 이 지역에서 전세를 구하던 B씨는 "어떤 아파트가 전세로 나왔다는 전화를 받고 퇴근 후 확인하러 오니 이미 나갔었다"며 "계약한 사람은 연차까지 쓰고 와서 현장에서 바로 계약했다"고 말했다. 최근 강동구는 봄 이사 수요에 재건축 이주가 겹치면서 지난주 아파트 전셋값이 무려 한 주 만에 1.39%(부동산114 조사) 오른 바 있다.
전세가 나오면 집을 둘러보지도 않고 일단 계약부터 진행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이 지역 W공인의 한 관계자는 "집에 융자만 없으면 일단 계약금을 거는 게 상책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지역 공인중개업소의 얘기를 종합하면 계약 만기가 돌아온 세입자들은 전세금을 높이는 것은 물론 반전세(월세 50만원 내외)로 돌려서라도 재계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재계약하지 않는 경우는 집주인이 월세를 100만원 이상으로 높인 보증부 월세로 전환하거나 아예 매매를 하려는 물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세 물건은 거의 전멸이라는 게 이들의 전언이다. 예컨대 성내동 청구아파트는 전세금이 2년 전 2억4,000만원에서 최근 3억1,000만원까지 뛰었음에도 지난 2월 이후 전세로 출시되는 물건은 전무하다. 반전세를 포함한 월세 계약은 이미 60%를 넘어섰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이 때문에 간간이 100만원 이상의 월세로도 세를 사는 경우가 생겨나는 모습이다. 기존 거주자들이 직장, 자녀 교육 때문에 수도권으로 밀려나지 않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계약하는 경우다.
천호동 L부동산의 한 관계자는 "예전에는 100만원 이상의 월세를 부담하는 사람들은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한정됐으나 최근에는 평범한 맞벌이 부부들도 어쩔 수 없이 이처럼 계약하는 경우가 꽤 있다"고 설명했다.
전세가 비율이 93%대인 양천구 목동 동구햇살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양천구도 전세가 비율 90%대 단지가 늘고 있는 상황이다. 목동 K공인의 한 관계자는 "집주인이 터무니없이 전월세 가격을 올려도 임차인들이 수용할 수밖에 없다"며 "1년 전부터 미리 전셋집을 사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어차피 다른 곳으로 가봐야 전세가격도 비싸고 물량도 없다"며 "어쩔 수 없이 집주인들의 요구를 수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 집 마련에 나서는 세입자들의 매매전환도 늘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성내동 삼성아파트의 지난 1~2월 매매거래는 23건으로 △2013년 14건 △2014년 19건에 비해 계속 늘고 있다. 특히 이것이 신고 기준임을 감안하면 이달 말께는 30건도 넘을 수 있다는 업계의 전언이다. 이와 달리 전월세 거래는 △2013년 38건 △2014년 15건 △2015년 12건으로 감소세다.
결혼을 앞두거나 전세계약을 1년여가량 남겨놓은 수요자들이 전세가 비율이 높은 단지를 중심으로 매매에 나서는 사례도 늘고 있다는 것이 현지 중개업소의 설명이다.
김규정 NH농협증권 부동산전문위원은 "전세가 우리나라에서 워낙 오래된 형태의 계약이라서 당장 월세가 전세를 대체할 것 같지는 않다"면서도 "분명한 것은 전세가 월세로 전환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고 세입자들이 월세를 수용하는 시각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sed.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