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증시는 너무 화끈하다. 오를 때는 끝없이 오를 것 같다가도 한번 방향을 틀면 한없이 추락한다. 오를 땐 악재가 하나도 안보이고 떨어질 땐 오로지 악재뿐이다.
이라크전쟁 이후의 주가 흐름이 이런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라크전쟁이 발발하자 전 세계에서 가장 열광한 게 바로 국내 증시다. 북핵 문제와 경기침체 우려는 투자자들의 안중에서 사라지고 오로지 전쟁랠리를 놓칠 수 있다는 초조함에 휩싸여 미국의 진격과 융단폭격 소식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이런 분위기가 일순간에 경악 쪽으로 돌변하고 있다. 주가는 오른 만큼 떨어질 태세다.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의 건재와 결사항전 소식이 전쟁을 호재에서 악재로 돌변케 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변화가 비단 우리 증시만의 일은 아니지만 더 열광한 만큼 더 빨리 식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미 이런 징후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종합주가지수는 지난 24일 이라크전쟁의 장기전 우려로 다른 나라보다 먼저 조정을 받고 25일에도 속절없이 추락했다. 일본 증시는 24일 오히려 급등했다. 지난 주말 춘분절 휴장으로 반영되지 않은 전쟁랠리가 이날 반영된 탓도 있지만 같은 악재에 의외로 담담했다.
낙관론 일색이었던 애널리스트들의 보고서들도 하나 둘씩 비관론으로 바뀌고 있고 투자자들은 주식매도에 나섰다. 북핵 문제와 경기침체 등 전쟁랠리의 흥분 속에 묻혀있던 악재들도 하나 둘 다시 두려움으로 불거지고 있다.
이제 차분하게 이라크 전쟁전과 지금의 증시 상황을 비교해보자. 바뀐 것은 단지 불확실성 가운데 하나였던 이라크전쟁이 터졌을 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그대로다. 북핵 문제와 경기침체 등 국내 증시의 더 큰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그런데도 투자자들은 열광했고 주가는 급등했다. 전쟁이 주가를 띄울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에 의해 생긴 `전쟁 버블`이라는 말 외에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걸프전 때의 학습효과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전쟁 당사국인 미국보다 우리 증시가 더 흥분한 것은 아무리 봐도 비상식적이고 비논리적이다.
과도한 맹신에 의한 이런 버블은 꺼지게 마련이다. 신경제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으로 믿었던 신경제 버블도 한 순간에 꺼졌다. 2000년 초 신경제 버블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종합주가지수는 1,000포인트, 코스닥지수는 280포인트까지 치고 올라갔지만 이후 종합주가지수는 반토막, 코스닥지수는 7분의 1토막이 났다.
지금이라도 추가상승이나 하락을 예단하기 보다는 냉정을 찾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라크전쟁은 아직 시작단계에 불과하다. 이제 겨우 일주일이 지났을 뿐이다. 순간 순간의 전황에 매달리는 것은 증시를 투기장화해 이익보다 위험을 키우는 일이다. 전해지는 전황의 신뢰도가 낮을 때는 더욱더 그렇다.
<이용택(증권부 차장) ytlee@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