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김나영 기자의 一日一識] <17> 가족경영'전략'


오는 14일 코스피시장에 상장하는 삼성 SDS에 관심이 뜨겁습니다. 동시에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가족 비즈니스(Family Business)와 승계(Succession)가 어떤 매커니즘(mechanism)으로 이루어지는가에 대한 관심 역시 증폭되고 있습니다. 가족들이 경영에 참여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아닌가를 논하는 원론적인 수준은 이미 넘어섰습니다. 오히려 많은 학자와 전문가들은 창업자 가족들과 전문 경영인 계층들 사이에 복잡하게 얽힌 관계와 업무 구조, 그리고 오랫동안 이어져 온 조직 문화의 속성을 살펴보는 게 바람직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경영전략의 거장인 대니 밀러 교수는 가족 기업이 장수 기업을 만드는 원천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관점에 따르면 가족 경영에는 세 가지 이점이 있습니다. 우선 오너 중심 경영은 단기 성과에 집착하지 않고 장기적인 혁신과 성장에 주목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또 가족이라는 테두리가 오히려 불필요한 사내정치를 줄이는 기제가 되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재무성과 말고도 가문의 명예, 기업의 명성 등 지켜야 할 것이 생기기 때문에 경영자의 책임감이 늘어나는 효과도 있습니다. 경영학자들은 일찍이 전문성 있는 경영자에게 회사를 맡겼을 때 주주들과 경영자의 이익 추구 방향이 일치하지 않아 생겨나는 ‘대리인 비용’(Agency Cost) 이야기를 하기도 했죠. 그러고 보면 가족 경영은 대리인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절묘한 방안으로 읽힐 수도 있겠습니다.

최근 세계적인 컨설팅회사 매킨지는 가족 경영의 장밋빛 미래를 전망한 바 있습니다. 2025년에는 세계적으로 매출액이 10억 달러 이상인 대기업이 1만5,000개, 그 중 37%가 개발도상국의 가족경영 기업일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유럽에서는 작년 기준으로 창업주 가문이 경영권을 행사하는 곳이 상장 대기업의 40%에 달합니다. 또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족 경영 기업의 매출 증가율은 연평균 7%로 일반 기업의 6.2%보다 우수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스웨덴의 발렌베리, 독일의 포르쉐 등이 변함없는 브랜드 가치를 인정받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힙니다.


그러나 가족기업의 어두운 측면도 만만치 않습니다. 가족기업이 1인 지배로 유지되는 경우 투명한 의사결정 절차와 안정적인 운영 방식이 무시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세이부그룹이 대표적입니다. 일본의 백화점 문화를 만들고 철도 건설, 레저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했던 대기업 세이부의 핵심 사업인 세이부철도가 2004년 도쿄증권거래소에서 상장 폐지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원인은 최대주주의 주식 보유 비율을 줄이기 위해 허위로 유가증권 보고서를 만든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문제가 불거지기 전 7년여의 시간 동안 이사회를 한 번도 열지 않았다는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츠츠미 요시아키 전 회장의 독단적인 경영으로 인해 사내외 이사들에게 의사결정 적정성을 물어볼 필요도 없는 구조였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한때 ‘세이부 왕국’이라고까지 불릴 정도로 승승장구했지만 오너 한 사람의 무리한 사업 방식과 절차적 정당성 상실이 비극을 불러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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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기업이 민주적인 의사결정 체계를 가졌다고 해서 문제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형제들끼리 계열사를 분점하거나 순환 식으로 돌아가면서 대표를 맡을 경우 일관성 있는 리더쉽, 지배구조가 아쉬울 수 있습니다. 특정인이 압도적으로 지분 또는 영향력을 갖는 구조가 아니라면 그룹 내의 사회적 합의를 얻는 데 급급해서 신속한 결정의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내부 정치도 무시하지 못할 단면입니다.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소그룹 간의 복잡한 관계 형성으로 인해 예상치 못한 관리 비용과 조정 비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경영학자들은 가족 경영도 확고한 리더쉽과 지배구조에 대한 원칙 없이는 시도할만한 비즈니스가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어떤 체제가 안정적이냐보다도 환경에 따라, 또는 문화에 따라 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사실상 가족 경영 형태로 운영되지만 그것을 직접적으로 표방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과거 대우의 김우중 회장은 창업주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오너 경영자”가 아닌 “월급쟁이 경영자”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요즘 들어 각계에서 ‘가족기업의 장점’을 이야기하는 목소리들이 들려옵니다. 경영사학자들은 미국 기업이 영국이나 일본 기업보다 우수한 이유 중 하나가 고도화된 전문경영인 체제와 사업 다각화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안정적이고 대리인 문제가 적은 가족 기업이 20세기형 전문경영인 체제의 단점을 극복할 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어떤 점에서는 유교 자본주의 배경을 갖고 있는 우리 경제 시스템의 관점에서 볼 때 바람직한 논의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족 기업은 산업과 환경의 맥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조직 구조이지, 그 자체로 교과서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가족 기업이 많다고 해서 그 시스템을 무작정 옹호하는 것도, 그렇다고 비판하는 것도 바람직한 입장은 아닙니다. 금융시장, 경쟁 기업, 경기 변동과 같이 다양한 기업경영의 변수들과 가족 경영을 하나의 전략적 요인으로 놓고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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