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법안 처리 줄줄이 지연<br>여야 하루종일 비난성명·정국 급속 냉각…예산안도 적자국채 규모싸고 접점 못찾아
| 이부영 열린우리당 의장이 9일 오전 국회 본청 앞에서 ‘간첩조작 규탄대회’를 열고 한나라당을 비난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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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첫 정기국회 마지막날인 9일 오후 2시. 내년도 예산 및 민생법안을 처리할 예정이었던 본회의장은 텅 비어있었다. 여야 의원들은 그 시간에 엉뚱하게도 의원총회나 법사위 점거농성에 매달려 있었다.
국회가 사실상 완전마비상태에 빠져들었다. 여야는 ‘여당 의원의 간첩 암약설’을 놓고 이날 하루종일 격렬한 비난성명만 주고받는 등 정국이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
이 바람에 정작 중요한 새해 예산안 처리는 증감액 규모를 놓고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으며 3대 뉴딜관련법 등 민생경제관련 법안이 줄줄이 지연되는 사태를 빚고 있다. 이들 산적한 경제 현안 처리는 모두 임시국회로 넘어갈 것으로 보이지만, 이 의원 사건을 둘러싼 대치국면이 쉽게 풀리기 힘들 전망이어서 현재로선 연내 처리마저 극히 불투명하다.
◇간첩 논란 싸고 ‘칼끝 대치’=우리당은 이날 이철우 의원의 노동당 가입을 주장한 한나라당 주성영ㆍ박승환ㆍ김기현ㆍ김정훈 의원 등 4명에 대해 의원직 사퇴를 촉구하고 국회 윤리특위 제소와 의원직 제명을 추진키로 했으며 한나라당도 진상조사위를 구성해 맞서는 등 정국의 때아닌 최대 현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여당은 당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이번 사태가 ‘한나라당의 자충수’이자 내부 결속의 기회로 판단, 그 어느 때보다 격앙된 분위기다.
열린우리당은 “이번 사건으로 인해 국가보안법의 폐해와 이를 폐지해야 할 당위성이 분명하게 확인됐다”며 국보법 폐지안의 국회 법제사법위 재상정을 시도키로 하는 등 강공으로 선회할 움직임을 보였고, 한나라당은 “국보법을 반드시 지켜야 할 이유가 분명해졌다”며 ‘결사저지’ 입장을 재확인했다.
◇경제현안 연내 처리도 불투명=새해 예산안 처리는 여야가 ‘적자국채 발행규모’를 놓고 의 의견차를 좁히지 못해 결국 임시국회로 넘어가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당초 ‘8,000원 증액’과 ‘7조5,000억원 삭감’으로 맞서던 여야는 이날 ‘증액 철회’와 ‘적자국채 2조 발행’에서 절충을 시도했으나 주장이 서로 엇갈리는 등 팽팽히 맞서면서 예산안 처리는 결국 답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박병석 우리당 예결위 간사는 “한나라당은 지도부와 실무진 간에 조차 의견 조율이 잘 안되는 것 같다”면서 “실무진들이 지도부 방침과는 달리 계속 7조5,000억원 삭감을 주장해 예산조정 작업이 한 발짝도 못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적자국채를 2조원으로 줄여야 한다는 타협안을 제시했는데도 여당이 반대하고 있다”며 “이렇게 되면 임시국회에서 여당이 단독으로 처리하려고 하지 않겠느냐”고 맞섰다.
원탁회의에서 여야가 접점을 찾지 못한 기금관리기본법ㆍ국민연금법ㆍ민간투자법 등 한국형 뉴딜 관련 3개법안 처리는 자연히 임시국회로 넘어가게 됐다.
그러나 여야가 모두 이번 파문을 각 당의 이념ㆍ노선 등 정체성과 직결된 사안으로 규정하고 초강경 대응을 다짐하고 있어 10일부터 소집될 임시국회도 초반부터 파행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여, 연내처리 여부마저 극히 불투명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