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이공계 위기를 기회로

올해 노벨상 수상자 발표에서 우리를 가장 부럽게 한 것은 일본이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3년 연속 수상했다는 것이다. 이로서 일본은 미국 등 선진국의 기초연구성과에 무임승차해 응용과 개발에만 몰두한다는 비난을 잠재우고 명실상부한 과학기술 대국으로서 대접을 받게 됐다. 반면 우리나라는 이공계의 위기감이 팽배해 있는 상황으로서 청소년은 이공계 진학을 기피하고 대학은 물론 대학원까지도 정원을 채우기 힘든 상황이며, 출연연구소는 정년하향조정, 낮은 급여 등으로 전반적으로 사기가 저하돼 있고, 산업체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피나는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연구개발능력이 위축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현시점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은 과연 무엇인가. 분명한 것은 세계 일류국가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튼튼한 과학기술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이공계의 위기'는 곧 '우리나라의 또다른 위기'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정부를 포함한 각계 각층이 이공계 위기극복과 과학자 사기진작책 마련을 위한 다양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기에 과학자로서 크게 기대하며 다음과 같이 몇가지 의견을 개진하고자 한다. 첫째, 근래의 이공계 현황에 대해 패배의식을 갖지 말아야 한다. 즉 지금부터 우리가 수립해야 할 정책은 이공계 위기극복이라기 보다는 이공계의 대변환 혹은 대약진 대책이어야 한다. 우리가 5년 전에 경험했던 IMF 구제금융이라는 경제위기는 우리의 경제 체질을 개선하는 최적의 기회를 제공했고 일본은 세계 2차 대전에서 패망 후 재벌을 해체함으로써 일본경제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 또 미국은 소련의 스푸토니크 위성발사를 계기로 대대적인 과학교육 개편 및 확고한 연구 목표설정과 과감한 투자에 힘입어 지난 60년대 이후 지금까지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강국 자리를 지키고 있다. 따라서 지금 이 시기가 그간 선진국의 과학기술 도입을 통해 성장해왔던 우리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임을 인식하고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둘째, 이렇듯 시기 적절한 기회를 살리기 위해서 우리 실정에 맞는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방안을 수립해야 한다. 교육ㆍ연구ㆍ산업 각 분야별로 현재의 상황을 정확히 진단, 이에 대한 처방을 범부처적으로 수립해야 한다. 이공계 대학 지원자수가 97년에 비해 16.5%나 감소했고 청소년의 장래 희망직업도 교수ㆍ연구직 및 과학기술인을 희망하는 사람이 2.6%에 불과한 실정이다. 그나마 산업체에서는 채용한 신규직원에 대해 반드시 재교육을 시켜야만 활용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이공계 교육이 이제 양보다 질 중심으로 재편하는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함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이제 유사한 학과를 갖는 200여개의 대학은 비슷한 수준의 졸업생을 대량 배출하던 시대를 하루빨리 마감해야 할 것이다. 또한 연구 분야의 경우 그 중심이 되는 연구소가 성장 초기에 비해 그 활력과 자긍심이 현저히 떨어져있다. 이에 대해서는 10년여간 다각적인 진단과 처방이 있어왔지만 어찌 보면 연구활성화라는 목표보다는 연구소 운영관리라는 수단ㆍ방법에 치우쳐온 감이 있다. 근래 연구원의 사기진작을 위한 여러 방안이 강구되고 있어 다행이지만 아직도 수단ㆍ방법에 너무 얽매이지 않는지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아울러 연구소도 그간 국내 유일의 대규모 박사 집단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창조적 과학기술의 열매를 생산ㆍ공급하는 집단으로 변신해야 할 것이다. 산업 분야의 경우 산업체 연구의 양적ㆍ질적 확충이 절실하다. 자기만의 기술은 결코 남에게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이류 기업에서는 남에게서 기술을 얻을 수 있으나 일류 기업은 스스로 자기만의 기술을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 외국으로부터 사오거나 국가나 연구소에게 헐값에 공급해달라고 해서는 결코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될 수 없다. 셋째, 범부처적이며 종합적인 계획이 마련되면 이를 중장기로 구분해 꾸준히 시행되도록 해야 한다. 일본의 경우 각종 과학시책이 한번 수립되면 수십년간 꾸준히 시행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이런 계획의 수립 및 연구집행에 있어 과학자를 전폭적으로 신회하고 맡겨 평생을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해준 결과로 기술분야는 물론 기초학문 분야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지긋지긋했던 가난을 60년대부터 우리의 노동력으로 극복했고 그후 모방과 개량을 통해 중진국으로 발돋움했다. 21세기 선진국이 되기 위해 갖춰야 할 독창적 과학기술력을 확보하기 위한 마지막 기회인 지금 이공계 위기를 활용해 이공계 대약진의 계기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의 역사적 소명이 아닐 수 없다. /이정순<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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