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박현신씨 "요리 제대로 하려면 '레서피'를 버려라"


이젠 요리도 전문가에게 배우는 시대가 됐다. 시어머니에게 대대로 전수받은 음식솜씨가 집안의 가풍이 되던 때가 있었지만 핵가족제도의 정착과 여성의 사회진출로 요리도 배워야 제 맛을 낼 수 있는 기술이 됐다. 1993년에는 ‘며느리에게 주는 요리책’이 50만부 이상 팔리면서 국내에도 요리책이 출판계의 스테디셀러로 자리잡는 등 관심은 계속 되고 있다. 주린 배를 채우던 궁핍의 시대가 지나면 제대로 만들어서 차려놓고 먹고 싶은 게 인간의 기본 욕구인 법. 재료의 계량화에 치중했던 요리는 신선함으로 한 단계 영역을 확장해가고 있다. 이른바 슬로 푸드다. 패스트푸드에 지친 현대인들이 건강을 위해 선택한 음식문화다. 국내에 재료를 구하기 어려우면 직접 키워서도 쓰는 박현신(47ㆍ사진) 요리연구가는 용인에 위치한 집의 텃밭에 10여년 전부터 40여종의 각종 허브와 블루베리ㆍ딸기 등 과일을 심었다. 그가 허브에 관심을 둔 것은 1984년 오사카의 츠츠지 일본조리사전문학교에서 유학하며 배운 요리의 재료를 국내에서 찾기 어려워서였다. 그는 “신선한 허브만 있어도 음식 맛을 제대로 살릴 수 있는데 그때는 허브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며 직접 키우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슬로 푸드를 지향하는 그는 요리 연구가로는 독특하게‘노 레시피’를 주장한다. 박씨는 “재료를 지나치게 계량화한 요리법을 맹신하면 요리의 기본인 창의력은 잊기 쉽다”며 “좋은 요리법은 오랫동안(slow) 잘 키운 재료로 손쉽게 빨리(fast) 할 수 있는 것”이라며 ‘슬로&패스트’ 요리법을 강조했다. 그의 ‘노 레시피’강의는 계속됐다.“레시피에 의존하다 보면 레시피 없이는 요리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만다. 마치 내비게이터 없이는 길 찾는데 어려워하는 것과 같다. 레시피 보다는 재료의 맛을 알아가는 공부가 더 중요하다.” 복잡한 레시피가 근사한 요리의 기본일 것 같은 고정관념은 요리를 마냥 어려운 것으로 만든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간편식으로 허기를 채우며 학원으로 향하는 아이들이 안타깝다는 박씨는 “인스턴트 음식을 즐겨먹고 자란 아이는 커서 냉동식 등 미각보다는 첨가물이 많이 든 간편식을 선호하는 경향이 짙다”며 “뇌를 깨우는 데 미각을 살리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 이탈리아에선 유치원 때부터 미각을 살리는 교육을 하는 데 우리도 어릴 때부터 맛을 알아가는 공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선한 식재료 구입을 위해선 조금씩 자주 장을 봐야 한다”는 그에게 ‘바쁜데 언제 매일 장을 보냐’고 질문을 던졌다. 그는 “젊은 농부들의 올바른 먹거리가 늘고 택배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 전국의 식재료를 쉽게 직거래 할 수 있다”며 “필요한 정보를 거르는 노하우를 확보한다면 소농가도 살리고 가족의 미각도 되찾을 수 있다”고 받아넘겼다. 흔한 인터넷 블로그 하나 운영하지 않았던 그의 허브 사랑은 2008년 ‘나는 허브에 탐닉한다’의 출간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최근 허브와 과일로 맛을 살린 디저트 책 ‘콜드 스위츠’(웅진리빙하우스 펴냄)를 출간했다. 그는 “디저트는 살아가는 데 필수품은 아니지만 피곤할 때 위로가 되고 기쁜 일에 행복을 더해 주는 것”이라며 “우유, 계란 등 흔한 재료에 제철 과일을 넣으면 인공적인 첨가물 없이도 시원하고 달콤한 디저트를 집에서 쉽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단맛이 강한 디저트는 건강을 해치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단맛 외에도 과일 맛 등 여러가지가 어우러져야 하는데, 판매용 디저트는 지나치게 단맛을 강조하는 게 문제”라면서 “재료의 맛을 추구하다 보면 ‘디저트는 단맛’이라는 공식을 깨뜨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른 새벽 일어나 텃밭에 허브를 키우고 틈나는 대로 요리 칼럼을 쓰면서 건강해지는 힐링 푸드를 연구하는 그의 하루는 남들보다 더 분주하지만 활기차 보인다. 사진=스튜디오416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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