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5월 25일] 납품단가 갈등의 '도돌이표'

연휴가 끝난 지난 23일 오전 메일 한통을 받았다. 포장상자 납품단가 인상 폭을 둘러싸고 대기업 C사와 첨예하게 대립해온 골판지포장 업체 4곳이 협상 타결을 이뤘다는 내용이었다. 한달 전부터 '납품 중단'까지 거론하며 '제값 받기'를 요구해온 이들 업체는 '중소기업계의 요구사항을 흔쾌히 받아 대승적 결단을 해준' C사에 감사를 표한다며 "이번 갈등과 치유과정이 대ㆍ중소기업 상생협력이 이뤄지고 갑과 을의 상하관계가 아닌 협력적 동반자관계로 정립되는 단초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을 맺었다. 주물업계의 생산중단이 지속되는 와중에 같은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골판지포장 업계의 협상 타결은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업체들의 기대처럼 이번 일이 실제 '갑을'관계 해소의 계기가 될 가능성이 얼마나 있을까. 갈등과 치유는 때가 되면 되풀이된다. 2004년에 그랬고 2008년에도 그랬다. 오죽하면 납품단가 갈등을 겪고 있는 한 조합 관계자는 "이제 납품단가라고 하면 두드러기가 날 정도"라고 하소연할까 싶다. 문제가 불거지고 해소되는 과정도 항상 같은 패턴을 보여왔다. '을'인 중소기업들은 벼랑 끝에 몰려도 공정거래위원회의 문을 두드리지 못한다. '납품 중단'이라는 극단적 대응을 거론하며 언론에 호소해야 정부ㆍ대기업이 중소업체들의 요구에 귀 기울이기 시작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한달 전 업체들이 '납품 중단'을 언급한 데 이어 비슷한 어려움을 겪어왔던 중소 주물업체들이 일부 생산중단에 돌입하면서 행동에 나서자 협상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당초 24일로 예정됐던 최종 협상일보다 나흘이나 빠른 20일 밤 급작스레 협상 타결에 도달한 것은 협상 당사자들이 갑작스레 상생협력에 눈을 떠서라기보다는 암암리에 조정에 나선 공정위의 적극적인 개입 결과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파국을 막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끝이 또 다른 시작에 불과하다면 타결에서 큰 의미를 찾을 수는 없다. 납품단가를 둘러싼 갈등의 도돌이표를 끝내기 위해 정부가 미봉책보다는 근본적인 대책을 진지하게 고민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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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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