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경제청문회] 정쟁 대상 아니다

경제청문회는 정쟁(政爭)의 대상이 아니다.지난 1년간 실직과 임금삭감, 기업 도산과 퇴출의 고통을 온몸으로 겪어온 국민들은 누구 때문에 이 아픔을 겪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다. 하루 아침에 노숙자 신세로 전락한 중산층 서민들은 왜, 하필이면 내가 뼈를 파고 드는 혹한과 싸우며 생사를 헤매야 하는지 그 원인을 꼭 알아야겠다고 치를 떨고 있다. 최근 경제청문회 개최 여부가 다시 불투명해지고 있다. 경제청문회가 여야간 흥정과 타협의 대상으로 전락할 개연성이 농후해졌다. 이대로 가다가는 경제청문회가 무산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게 됐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들은 더이상 청문회 시기를 늦추거나 정략과 술수 때문에 경제파탄을 초래한 진상 규명작업을 중도 포기해서는 안된다며 정치권의 신속한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 여권은 국회 529호사건으로 꼬인 정국경색을 풀기 위해 경제청문회를 희생물로 삼으려는 의도를 내비치기 시작했다. 한나라당은 비리혐의 의원들이 사법처리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임시국회를 소집해놓고 여권의 동참을 요구하고 있다. 여권은 11일 『한나라당이 경제청문회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증인선정과 일정 등을 협의할 수 있다』며 협상할 뜻을 밝혀 청문회를 한나라당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미끼로 삼으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한나라당은 『여당 단독으로 처리해놓고 야당의 참여를 기대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며 불참 방침을 거듭 밝히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국회 529호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출국금지 취소와 임시국회에 응할 것을 선결조건으로 내걸었다. 여권이 협상조건으로 내걸고 있는 청문회 증인과 참고인 축소 움직임도 청문회의 취지를 퇴색시키고 있다. 경제청문회는 6·25동란 이후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를 초래한 김영삼(金泳三) 정권의 경제실정(失政) 원인을 규명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것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국민회의 조세형(趙世衡) 총재권한대행은 한나라당과에 대해 대화를 재개할 것을 촉구하면서 『청문회 증인 등 모든 문제를 한나라당과 협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여권이 한나라당이 요구하는 YS부자의 증언을 취소할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발언이다. 정치권은 이미 일정상의 이유를 들어 증인을 20명선으로 대폭 줄인다는 방침을 정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회의 고위당국자는 『YS가 뭘 알겠느냐. 들을 답변도 없다』며 『이들의 증언은 과거청산 종결을 위한 정치적인 의미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권은 현재 청문회 증인 및 참고인으로 75명을 선정해놓고 있다. 이에 대해 감사원 관계자는 『여권이 선정한 증인은 총체적 경제위기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최소한의 숫자』라고 평가했다. 일정이 지연되는 것도 사정은 비슷하다. 당초 여권은 『국정을 책임지는 집권여당으로서 불가피하게 경제청문회 안건을 단독 처리하고 야권이 응하지 않을 경우 단독청문회도 불사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국민회의는 며칠 못 가 『한나라당이 불참한 청문회는 의미가 없다』며 청문회 연기설(說)을 흘리고 있다. 오는 2월25일은 국민의 정부 출범 1주년이 되는 날이다. 지금 여야 정치권의 태도로 볼 때 경제청문회가 호랑이는 커녕 고양이 꼬리도 그리지 못한 채 정치혐오증만 키우는 무대로 전락할 공산이 커지고 있다. 【장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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