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 대통령의 '댓글정치'

노무현 대통령의 인터넷 댓글을 두고 한동안 여러 말들이 있었다. 말 한마디의 무게가 남다를 수밖에 없는 대통령이기에 탈권위주의도 좋지만 너무 가볍지 않느냐는 게 논란의 출발점이다. 댓글은 영어 ‘리플라이(reply)’를 우리글로 옮긴 신조어로 ‘리플’이라고 더 많이 부른다. 사이버 공간에서 리플의 위력은 대단하다. 컴맹만 아니라면 누구든 의견을 개진할 수 있고 쌍방향 커뮤니케이션도 가능하다. 언론 이상의 여론 형성 기능을 하기도 한다. 첨단 과학기술 덕분에 만개한 리플 문화는 얄궂게도 야누스의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인신 공격과 루머 확산의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하고 ‘개똥녀 사건’에서 보듯 사이버 폭력으로 얼룩지기도 한다. 그래서 ‘악(惡)플’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학자들은 댓글 문화의 이 같은 부정적 측면을 ‘사회 지체 현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사회 지체 현상은 미국의 사회학자 오그번이 제기한 이론으로 물질문화의 빠른 변화 속도와 비물질 문화의 완만한 변화 속도 차이에 발생하는 사회적 부조화를 일컫는다. 네티즌은 풍요로운 물질문화를 향유하지만 그 의식 수준은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사회적 문제를 낳는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댓글 논란을 이 같은 지체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해답의 단초는 조기숙 홍보수석의 발언에서 찾을 수 있다. 조 수석은 지난 8월 “대통령은 21세기에 가 있고 국민들은 아직도 독재 시대의 문화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조 수석은 ‘야당과 언론 때문에 국민과 정부간에 의사소통이 잘 안된다’는 취지라고 해명했으나 대통령과 국민의 의식 사이에 괴리가 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낸 것은 분명해 보인다. 대통령의 의식은 높은 곳에 있고 국민은 낮은데, 언론과 야당이 그 틈을 매워주기는 고사하고 더 벌린다는 생각인 것이다. 노 대통령 역시 ‘반드시 민심을 따라가야 하는가’ ‘표피에 흐르는 민심과 저류를 흐르는 민심이 항상 같지는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통령의 생각과 눈이 설령 ‘높은 곳’에 있다고 해도 국민이 그 수준에 맞출 수도, 맞추도록 할 수도 없다. 이들 사이에 지체 현상은 당연하며 그 간극을 누가 줄이고 눈높이를 누가 맞춰야 하는지 답도 뻔하다. 대통령과 국민간의 ‘정치적 지체 현상’이 심화할수록 그 대가는 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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