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이달의 과학기술자상] 류교수의 연구세계

지구 생명체 비밀 밝히려 밤샘 마다않는 '연구벌레'아무 생각 없이 알파벳을 일렬로 배열해보자. 그러면 의미 없는 단어가 조합이 생길 것이다. 드문 일이지만 그 가운데는 'BOOK', 'PEN'같은 어떤 의미를 가진 단어들도 나타날 것이다. 그렇다면 알파벳을 의미 없이 조합해 세익스피어의 비극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수학적으로 따지면 확률은 '0'이 아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생명의 원리를 연구하는 류성언 박사는 "연구를 거듭할수록 알 수 없는 힘이 느껴진다"고 말한다. 류 박사에게 있어 모든 생명체는 잘 다듬어진 하나의 작품이다. 그 중 인간은 세익스피어의 명작에 비유할 수 있다. 26개의 알파벳의 조합이 명작을 이루는 것처럼 생명체의 근본인 DNA는 4개의 요소로 구성돼 있다. 바로 아데닌(A), 구아닌(G), 티민(T), 시토신(C)이다. 모든 생명체는 똑같이 이들 4가지 염기를 가지고 있다. 다만 박테리아와 인간을 구별하는 것은 이들 염기쌍이 얼마나 길고 복잡한가에 달려 있다. 류 박사는 "박테리아가 간단한 단어라면 인간은 세익스피어의 비극에 해당할 것"이라며 "AㆍGㆍCㆍT의 조합을 통해 인간이라는 명작이 탄생할 수 있었다는 게 놀라울 뿐"이라고 말한다. 류 박사는 가끔 엉뚱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왜 지구상의 생명체는 모두 4개의 염기를 가지고 있을까'라는 것과 '만약 5개의 염기를 가진 생명체가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하는 것들이다. 류 박사의 공상과 호기심은 생각을 얽어 매지 않고 자유롭게 풀어놓는 데서 나온다. 이에 대해 그는 "아마 젊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한다. 류 박사는 실제 젊다. 과학기술부의 지원을 받는 비슷한 연구그룹장 가운데서도 가장 어리다. 그는 아직 30대다. 젊다는 것이 장점일 수도 있지만 류 박사에게는 고통스럽기만 했다. 학회에 나갈 때면 주위에서 그를 부를 때마다 "류 박사는 젊으니까 좋은 아이디어가 있을 것 같은데요", "어디, 젊은 류 박사가 한마디 하시죠"같이 젊다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녀 여간 부담이 됐던 게 아니다. 7년 전 미국 하버드 대에서 돌아와 처음 연구그룹을 꾸렸을 때 그의 젊음은 지금보다 훨씬 돋보였다. 지금은 좀 나이지긴 했다. 그러나 그는 꽉 찬 나이로 40대에 들어서는 내년이 은근히 기다려 진다. 류 박사는 생명공학연구원 내에서 '연구벌레'로 통한다. 밤늦게까지 연구실에 남아있는 것은 물론 밤샘 연구도 밥 먹듯 한다. 주위 사람들은 그의 억척에 혀를 내두르곤 한다. 류 박사의 근면은 미국 유학시절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교수라고 하면 뒷짐지고 있는 줄로만 알았어요. 그런데 박사학위를 지도한 웨인 핸드리슨 교수는 학생들과 함께 밤늦게 토론하고 밤새 함께 연구하셨죠. 그러면서도 실험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까지 꼼꼼히 챙겨줬어요." 이러한 경험은 그에게 충격적이었다. 과학자의 본 모습과 진정한 연구자세, 문화를 느낀 것이다. 그래서인지 류 박사는 연구단 식구 한명 한명을 살피는데 게으름을 피지 않는다. 류 박사에게 있어 연구는 경쟁이다. 경쟁상대는 전세계에 너무 많다. "지금까지는 나름대로 잘 해왔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곧 뒤쳐집니다. 한눈 팔 겨를이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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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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