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내에서 용산4구역과 같이 재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곳은 모두 467곳에 이른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재개발구역을 막론하고 조합과 세입자 간 갈등이 없는 곳은 전무하다.
용산4구역 참사도 결국 이 같은 갈등이 표면화된 사례 중 하나일 뿐이다. 전문가들은 현재와 같은 재개발 시스템이 유지되는 한 전국의 재개발구역 모두가 제2, 제3의 용산4구역 참사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개발이익’과 ‘생존권’의 첨예한 대립=재개발사업은 처음부터 끝까지 갈등과 대립의 연속이다. 여러 이해집단이 맞물려 있다 보니 추진위원회 단계는 물론 조합 설립ㆍ사업시행ㆍ관리처분계획인가는 물론 준공 후에도 조합원 간 갈등을 겪는 곳이 부지기수다.
반복되는 대립과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은 다름 아닌 ‘돈’이다. 땅과 건물 소유주인 조합원들은 최대의 이익을 내야 하고 반대로 세입자들로서는 한푼이라도 더 받아내야 한다. 어느 한쪽이 득을 보면 다른 한쪽이 손해를 보는 ‘제로섬’ 게임이다.
특히 사업기간에 따라 수익성이 좌우되다 보니 강제철거ㆍ이주 등의 무리수가 동원돼온 게 사실이다.
박원갑 스피드뱅크 소장은 “사업을 단계별로 추진해 시장 충격을 완화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공이 외면하는 공공사업=재개발사업 인허가권자인 일선 지방자치단체들은 사실상 조합과 세입자 간 갈등을 외면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주민 100%의 동의를 전제로 하는 재건축과 달리 재개발은 토지 소유자 80%의 동의만으로 사업추진이 가능하다. 사업에 반대하는 20%와 갈등을 빚을 소지를 항상 안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이른바 달동네가 대부분이라는 재개발 특성상 세입자 대다수가 사회에서 소외된 취약계층이라는 점도 문제다. 옮겨갈 곳조차 마땅치 않은 세입자를 강제로 내보내는 과정에서 극한의 대립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공공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인허가권자인 일선 시군구는 개입 자체를 꺼려해왔다. 심지어 용산구청의 경우 재개발 세입자들이 구청 앞에서 농성을 벌이자 한때 구청 사거리에 직접 플래카드를 내걸어 “세입자 문제는 조합 측과 해결하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건설업체의 한 관계자는 “재개발사업에 대해 일선 지자체들은 항상 골치 아픈 민원은 조합과 시공사가 알아서 해결해 오라는 식”이라며 “공공이 갈등 해결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맞춤형 보상대책 세워야=재개발사업을 둘러싼 갈등의 악순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세입자들에 대한 보상 역시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재개발구역 내 세입자의 상당수는 임대아파트에 거주할 경제적 능력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 재개발로 쫓겨난 세입자들이 몇 푼의 이주비를 받아 또 다른 달동네를 찾아 옮겨다니는 악순환 고리가 반복된 셈이다.
상가 세입자 문제는 더욱 복잡하다. 상가의 경우 영업손실에 대한 보상 규정에 따라 조합 측이 상가 세입자들에게 3개월분의 휴업보상금을 지급해왔다. 하지만 대부분이 영세 자영업자이다 보니 영업규모가 정확하지 않은데다 ‘권리금’이나 ‘시설투자비’ 등은 현실적으로 보상이 불가능해 합의를 도출하기가 어려운 구조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아파트 중심의 임대주택 공급에서 벗어나 세입자들의 경제적 부담능력을 고려한 다양한 형태의 대체 주거지를 마련하는 한편 상가임차인 보상 규정도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환용 경원대 도시계획과 교수는 “재개발을 추진할 때 사업부지 일부를 제외해 세입자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정부나 지자체가 필요한 인프라를 확보해주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선종필 상가뉴스레이다 대표는 “이번 용산4구역 참사의 주된 원인 중 하나는 비현실적인 영업손실 보상 규정”이라며 “재개발사업의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임차인들이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법적 보상 대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