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호주 한인 공동체(한민족경제권이 떠오른다)

◎5만여명 한마음 ‘부토대 쌓기’ 질주/대부분이 관광·음식업에 종사/최근엔 현지국내기업과 연계/제조·건설분야 등서 두각 보여/80년대부턴 1.5세대 중심으로/변호사 등 전문직 잇따라 진출/상권형성 ‘보호막역’ 맹활약호주는 한인사회의 규모만으로도 일단 주목할 만한 국가다. 호주 전체에 퍼져사는 교민만 4만명, 유학생등 유동인구까지 합하면 현재 5만명이상 한국인이 호주땅에 발을 딛고있다. 우리나라의 대호주투자는 61년 5월 국교수립이래 석탄개발을 위주로 진행돼 왔으며 투자규모는 2억달러를 웃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호주 무역수지는 45억달러 적자. 석탄 철광석 양모 등 원자재 수입이 많았기 때문으로 호주는 중요한 교역국의 하나다. 그러나 국내에선 이런 호주를 한번 가볼만한 관광지쯤으로만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사실 호주교민중 상당수가 모국인을 상대하는 관광, 음식료업에 종사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호주 교민들의 경제활동상을 알아보기 위해 먼저 호주이민의 역사를 알 필요가 있다. 이는 60년대 호주의 콜롬보계획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개도국 인재들에 대해 무상교육을 실시, 비행사 등 특수직 수요를 충족시키려는 이 계획을 활용키 위해 호주로의 이민이 시작됐다. 한번 호주로 온 한인들은 대개 귀국을 포기하고 나름대로 이 땅에서 살 길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그 수는 70년대 중반까지 고작 1백명을 넘지 못했다고 한다. 본격적인 호주이민은 월남전 참전이 계기였다. 수많은 파월기술자들이 제2의 고향으로 호주를 택했고 그들은 대개 기술을 가지고 있어 정착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물론 대부분 불법입국이었다. 75년 1차 사면령이 내려지자 호주이민 1세대들의 가족초청이 시작됐고 호주 한인은 78년 3천여명 수준으로 불어났다. 때맞춰 남미이민에 실패한 사람들이 호주로 몰려들었고 이들 또한 70년대말의 2차 사면령을 계기로 합법적인 이민자로 변모했다. 이때 온 사람들은 용접 등 기능공이 많았고 요리사, 택시운전사도 적지않았다. 특별한 기능이 없는 사람들이 청소잡역부도 마다하지 않게된다. 80년대초 호주교민 사회는 1만명으로 불어나 80년대 중반이후엔 CAMPSIE라는 한인공동체가 출현하기도 했다. 현재는 최대도시인 시드니에 3만여명, 호주 전체적으론 4만여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상사주재원, 유학생 등 유동인구도 1만여명에 이른다. 이런 과정을 거쳐 한인사회가 서서히 형성된 만큼 현재 호주 한인들의 직업이나 경제적 토대는 그리 튼튼한 편이 못되는 게 사실이다. 지금도 상당수 교민은 관광업에 종사하고 있다. 음식점을 하는 교민도 많다. 하지만 교민들이 쉬운 일만 찾았기 때문만은 물론 아니다. 이는 호주의 산업구조를 들여다보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호주 경제에서 1차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7.6%, 2차산업 15.8%, 3차산업은 무려 76.6%다. 3차 산업이 과잉비대한 불균형한 구조다. 그만큼 제조업하기가 어려운 나라여서 한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업종도 3차산업에 집중돼있다. 또 호주의 시장규모는 생각보다 훨씬 작아 거래가 이루어지더라도 소액, 소량 거래가 대부분이다. 대량생산 대량소비에 익숙한 한국민들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최근 호주 한인들은 이런 현지여건에 맞춰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우선 어린 시절 이민와 호주교육제도 아래 성장한 이민 1.5세들은 전문직을 선호한다. 금융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고 의사 변호사도 적지않게 배출돼있다. 현직 한인 변호사는 8명. 변호사 진출에 벽은 전혀 없으며 대학졸업후일정기간 연수를 받고 변호사 사무실에서 경력을 쌓으면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 대학에는 수많은 변호사 지망생 등이 대기중이다. 호주의 한국인 변호사들은 대부분 한국기업과 연계된 기업변호사들이다. 종합상사나 한전, 포철, 은행등이 주고객이며 호주회사의 한국진출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있다. 지난 83년 한인 최초로 변호사자격을 취득, 현재 한국 종합상사와 금융기관의 고문변호사로 활동중인 방승규씨(프리힐 홀링데이&페이지 소속)는 『호주에 뿌리를 내린 전문인력들이 좀 더 많이 배출돼 호주 한인 경제권의 보호막 역할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호주 한인사회의 또다른 특징은 수많은 현지진출 상사와 교민들의 연계다. 호주에 진출한 종합상사는 60여개. 대부분 현지법인 형태로 진출해있고 현대 대우 등 자동차 생산업체에 대한 이미지가 특히 좋은 편이다. 한국 업체들의 주 사업은 원자재수입 등 호주의 풍부한 자원을 활용하는 업종에 치우쳐 있지만 요즘은 하이테크 정보통신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또 3국무역 쪽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는 추세다. 현지 직접투자도 활발하다. 신동아의 아파트단지 분양, 두산의 맥아공장과 양모 1차가공공장, 한솔의 조림산업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기업들은 현지진출 초기와 달리 교민인력을 활용, 연계를 대폭 강화하고 있다. 상사 등 주재원사회와 교민사회가 깊은 유대를 가지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교민사회에서 또하나 주목할 부분은 제조업을 통해 호주 경제권에 뿌리를 내리는 사례가 늘고있다는 점. 호주는 잘 알려진대로 제조업이 취약한 나라다. 소비재는 대개 수입을 통해 조달하고 있으며 그나마 소량주문이 압도적이다. 따라서 제조업을 하더라도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어렵다. 더욱이 취약한 사회간접자본, 까다로운 노동법규, 강력한 노조, 고임금 저생산성 등 여건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외국의 투자기업에 대한 우대조치도 거의 없다. 세제, 노동법규, 현지 금융조달 등에서 호주 기업과 동일한 대우를 받는다. 이같은 악조건에서 제조업에 뛰어들어 당당히 호주기업들과 겨루는 대표적인 기업으로 전선케이블을 생산, 판매하는 SMI를 들 수 있다. 이 회사 김만기 사장은 호주전선조합의 정회원. 매출액 2천만달러 규모로 같은 업종의 12개 업체중 중간에 해당하는 외형을 갖췄다. 유난히 배타적인 기업풍토에서 살아남은 SMI의 예는 이제 보편화되는 과정이라는게 현지 교민들의 얘기다. 호주 금융시장에 도전하는 한국계 은행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호주한일종합금융(한일은행 호주현지법인) 곽준영 사장은 『호주 금융기관의 경쟁력은 세계수준』이라며 『한국계 은행들은 아직 국내 기업들과의 거래에 중점을 두고 있으나 점차 호주기업들과의 거래에도 관심을 갖고 경쟁체제를 갖추는 추세』라고 밝혔다. 최근 진출한 주택은행은 특유의 강점을 살려 주택금융시장에서 호주 은행들과 본격적인 경쟁을 벌일 채비를 하고 있다. 호주진출 국내금융기관중 가장 큰 외형을 자랑하는 호주외환은행은 한민족 경제권 확대에 큰 역할을 하고있다. 특히 제조업에 진출하는 교민들에게 이 은행은 호주은행들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장점을 살려 상당 규모의 대출을 실시하고 있다. 한편 호주 내에서도 한민족 경제권의 형성에 관심을 쏟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 7월4일 시드니에서 열린 코리아네트워크 대양주 추진대회는 세계 1백26개국에 퍼져있는 교포기업과 한국내 기업을 연결, 한인상권을 형성한다는 취지를 내세웠다. 아직 구체적인 성과가 나온 것도 아니고 사업의 현실성도 예측하기 어렵지만 새로운 시도로 일단 주목을 끌었다.<시드니=손동영 기자> ◎인터뷰/김만기 SMI 사장/“입찰 등 어려움 고품질로 극복… 2002년 증시상장 계획” 각종 전선을 생산, 도매하는 SMI는 시드니에 25명, 멜버른과 서울 현지법인에 각 4명의 직원을 두고 있는 중견기업이다. 이 회사는 처음엔 면사와 원면을 수입하는 업체였으나 지난 94년 전선업에 진출, 현재 연간 2천만달러 규모의 매출 실적을 올리고 있다. 김만기 사장은 호주에서 제조업하기의 어려움을 직접 체험한 끝에 나름의 생존전략을 터득했다고 말한다. ­호주에서 제조업으로 뿌리를 내리기 쉽지않았을 텐데. ▲그렇다. 호주 업계의 배타적인 풍토때문에 고생했다. 특히 전선업계는 백인들의 마지막 보루로 여기는 분위기가 강했다. 처음엔 단순한 수입에 치중했는 데 역시 어려웠다. 결국 기계와 부품소재를 갖고와 생산을 시작했고 지난 95년 10월엔 호주전선조합 정회원으로 인정받았다. 처음엔 공공기관 입찰에 참여, 품질을 인정받은 뒤 도매에도 진출하는 방향을 택했다. ­호주에 이민와 교민들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제조업에 뛰어든 이유는. ▲한국에서는 제조업을 해보지 않았다. 처음 부딪쳐보는 분야였지만 나름대로 시장분석을 했고 성공가능성을 확인했다.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겠지만 호주사람들도 제조업을 하는 사람은 달리 본다. 서비스업보다 제조업쪽에서 성공해야 이 사회에 기여하는 부분도 많고 인정도 받을 수 있다고 본다. 개인적으론 일하는 틈틈이 경영학 석사과정을 준비중이다. ­특별한 성공비결이 있다면. ▲우선 호주영어를 익히는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사실 이민오는 사람들이 소홀한 부분이지만 미국식 영어와 호주식 영어는 상당히 다르다. 그들에게 파고들려면 그들의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봤다. 또 이왕 호주에 왔으니 호주돈, 호주사람을 최대한 활용하려했다. 현재 전 종업원이 호주인이며 시설자금도 대부분 호주돈이다. 고객은 1백% 호주인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비전 2002를 세워놓고 있다. 그때까지 주식시장에 상장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정보통신분야에도 진출할 예정인데 이미 데이콤과 에이전트 계약을 맺었다. 아이디어는 많지만 아직 자본력이 미약하다. 보완해야 할 부분이다. 김사장은 『공공공사에 입찰할 때는 한국정부 위상이 중요하다』며 국내 경제사정에도 끈끈한 관심을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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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동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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