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겁먹을 것 없다(사설)

미국이 우리나라 자동차 시장을 슈퍼 301조에 의한 우선협상 대상국관행(PFCP)으로 지정, 유례없는 강경조치로 나왔다. 3차례에 걸친 협상이 무위로 끝나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됐다.그렇다고 당장 보복조치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협상이 시작되는 것이지만 한국도 미국의 일방적이고 부당한 논리에 맞서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 정면 대응키로 함으로써 양국간의 통상마찰이 격화, 무역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한미간의 전통적인 우호관계나 호혜적인 통상확대를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이다. 미국의 슈퍼301조 발동은 일방적인 강대국 논리의 강요일뿐 아니라 그들이 주도한 WTO의 자유무역 정신에도 위배된다. 한국은 미국차에 대해 차별하지 않고있다. 그럼에도 관세율과 자동차세율을 내리라는 것은 내정간섭이고 조세주권을 무시한 횡포다. 뿐만아니라 문화와 관행, 소비자 의식까지 부인, 미국을 따르라고 강요한다. 미국차를 많이 사라고 압력을 넣기에 앞서 한국시장에서 유럽차나 일제에 비해 인기가 없고 잘 팔리지 않는 이유를 스스로 캐봐야 할 일이다. 그 원인은 전적으로 미국차에 있는 것이지 한국 정부나 소비자 탓이 아니다. 더욱이 한국은 대미 무역적자국이다. 적자가 부풀어올라 지난해 1백20억달러, 올해들어 8월까지 벌써 71억달러에 이른다. 심각한 불경기까지 겹쳐 있다. 적자국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적자를 더 내라고 강요하는 꼴이다. 한국을 도와주는 것은 곧 그들의 시장을 키우는 길인데도 눈 앞의 작은 이익만 보고 있으니 대국답지 않게 쩨쩨해 보인다. 그럼에도 미국이 강수를 두게된 속셈을 알만 하다. 슈퍼 301조의 칼로 한국에 겁을 줘 앞으로 있을 협상에서 미국의 의도대로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전략이 숨겨져 있다. 또 한국의 자동차 산업 성장을 사전에 견제하려는 공세적 의미도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자동차 생산능력을 확충하면 제3의 시장에서 미국차와 경쟁하게 될 것인데 이를 미리 저지하려는 내심이 깔려 있는 것이다. 이 밖에 미 의회를 겨냥한 전략적 의도도 읽을 수 있다. 미 행정부가 의회로부터 신속협상권 동의를 얻어내기 위해 한국을 본보기로 삼았다는 분석이다. 미국은 한국을 만만하게 보고 있다. 그동안에도 얼핏하면 슈퍼 301조를 들먹이며 겁을 줘왔다. 더 이상 겁 먹고 끌려 다닐 수는 없다. 당당하고 합리적인 논리로 맞대응해야 한다. 물론 제도와 관행을 국제 규범에 맞게 개선하고 호혜를 존중해야 하지만 국익과 국민적인 자존심을 버리고 부당한 압력에 굴복해서는 안된다. 단기적으로는 불이익의 부담이 예상된다. 슈퍼 301조의 첫 적용으로 한국차에 대한 이미지 손상이 걱정된다. 수출차질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여러모로 더 많은 보탬이 될 것이다. 강대국이라해도 함부로 얕볼 수 없고 겁을 준다 해도 무턱대고 무릎 꿇지 않는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만도 성과다. 과거처럼 일방적으로 양보하면서 조용히 해결하려는 자세는 이제 국민이 용납하지 않는다. 그 다음은 소비자들이 판단할 일이다. 소비자 의식도 예전과 다르게 깨어 있다. 한미 양국은 작은 이익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큰 눈으로 길게 봐야 한다. 자칫 상호보복은 반미감정으로 치달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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