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천년은 누가 뭐래도 인터넷의 시대. 1969년 미국 국방부의 아르파넷(ARPANET)으로 태어난 인터넷. 불과 30년만에 「문명의 황제」로 등극했다.인터넷도 요즘 새로운 밀레니엄을 준비하기에 바쁘다.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이뤄진 것은 인터넷의 역사에서 새벽의 어슴프레한 빛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앞으로 우리가 인터넷에서 볼 것들은 상상을 넘는다. 과연 어떤 일이 펼쳐질까.
◇컴퓨터를 떠난 인터넷
지난 15일부터 19일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99 가을 컴덱스」는 인터넷 밀레니엄을 한껏 살펴볼 수 있는 자리였다. 컴덱스 내내 가장 많이 오르내린 말은 역시 인터넷. 특히 올해는 「하늘(컴퓨터)에서 땅(전자제품)으로 내려온 인터넷」이 단연 화제였다.
컴퓨터의 경우 올해 컴덱스장에서는 주목할만한 신제품이 드물었다. 기껏 가벼운 노트북PC 정도. 『컴덱스에서 컴퓨터가 사라졌다』라는 말도 나왔다.
반면 1~2년 전이라면 전혀 생각도 못할 곳에서 인터넷이 등장했다. 대표적인 것이 휴대폰, TV, PDA(개인정보단말기) 등 3총사. 노키아 등이 내놓은 인터넷 휴대폰은 휴대폰이 더 이상 「전화기」가 아니라 「주머니에 넣는 컴퓨터」로 탈바꿈했음을 보여줬다. 소니·필립스 등이 선보인 디지털TV 앞에는 늘 수많은 관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인터넷은 이미 거만한 컴퓨터를 떠났다. 외국의 조사기관들은 5년 안에 PC가 아닌 제품으로 인터넷에 접속하는 사람이 절반을 넘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냉장고·에어콘·시계·전자렌지로도 이메일을 주고받게 된다는 것이다.
가장 환상적인 인터넷 장치는 우리의 몸일 것이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에서는 네트워크를 돌아다니는 범죄자를 잡기 위해 주인공의 영혼이 직접 인터넷에 들어간다. 이쯤 되면 인간의 존재 의의조차 인터넷에 있을지 모른다.
◇100배 더 빠른 인터넷
인터넷 이용자들의 가장 큰 불만은 느려터진 「거북이 속도」다. 그러나 21세기에는 어느 광고처럼 빛의 속도로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새 천년에는 각 가정마다 광통신망이 깔린다. TV를 켜면 바로 방송이 나오듯 마우스를 누르면 바로 그 홈페이지가 뜬다. 더 이상 「웹사이트의 응답을 기다리는 중」이라며 「세월아 네월아」 기다리는 시간은 없게 된다.
이런 미래를 가능케 하는 기술이 현재 미국에서 개발되고 있는 「인터넷Ⅱ」다. 인터넷Ⅱ는 현재보다 100~1,000배 더 빠르게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기술. 예를 들어 인터넷Ⅱ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30권을 1초에 주고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도 올해 서울대가 중국 베이징대 등 태평양 연안의 34개 대학과 함께 인터넷Ⅱ로 통신망을 연결하기로 했다.
이처럼 빠른 인터넷이 나타나면 인터넷의 개념이 바뀐다. 특히 동영상, 음성 등 멀티미디어 정보를 마음껏 주고받을 수 있다. 하버드대의 강의를 서울에서 듣고, 프랑스에 있는 환자를 한국에서 치료할 수 있다. 시간과 장소의 개념이 바뀌는 것이다. 영화 「플라이」처럼 사진이 아니라 물체를 직접 전송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전문가들은 『초고속 인터넷이 완성되면 우리의 생활과 인터넷은 완전히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따뜻한 인터넷 칼리 피오리나 HP 회장은 지난 16일 컴덱스 기조연설에서 『우리는 인터넷의 중요한 전환기에 와 있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이제 인터넷을 이대로 「차갑고, 비개인적인」 것으로 놔두어야 할지, 「따뜻하고 친근한」 인터넷으로 바꾸어야 할지 선택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초창기 인터넷이 보여준 평등과 자유와 다양성은 수많은 네티즌을 감동시켰다. 그러나 인터넷에 거대한 돈이 묻혀 있다는 사실이 알려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인터넷에서 중요한 것은 이제 개인이 아니라 기업이며 돈이다.
PC통신에서 가장 많이 이용하는 서비스는 정보나 쇼핑이 아니라 채팅·게시판·동호회 등 사람들간의 관계를 맺어주는 「커뮤니티 서비스」다. 한국의 네티즌들은 경쟁과 부조리로 가득찬 현실을 벗어나 가상사회에서 따뜻함을 느끼고 싶어 한다. 「스타크래프트」라는 컴퓨터 게임이 밀리언 셀러가 된 것은 그 게임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다른 사람들을 연결시켜 주기 때문이다.
피오리나 회장의 말대로 인터넷은 이제 달라져야 한다. 차갑고, 돈만 아는 인터넷은 앞으로 사람의 체온이 느껴지고, 우리의 소중한 것들을 지켜주는 공간으로 바뀌어야 한다.
인터넷은 새로운 밀레니엄에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많은 전문가들은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 심지어 우리의 생각과 감정까지도 인터넷과 하나로 묶인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전에 인터넷은 「따뜻하고 정이 느껴지는」 인터넷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상연기자DREA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