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기획단장의 외국 방송 한국어 더빙 규제 완화 검토 발언이 방송 주무 부처인 방송위원회와 아무런 조율 없이 나온 것으로 알려져 방송위가 FTA 협상에서 사실상 '왕따'를 당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방송위가 FTA 협상단의 발언에 입장 표명을 하지 않은 채 소극적인 태도로만 일관하고 있어 이번 7차 협상에서 예정된 방송 분야 협상 결과에 방송위가 어떤 입장을 취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어떤 통보도 받지 못해" 방송위 관계자는 14일 "지난 9일에 있었던 이 단장의 발언은 방송위와의 사전 협의를 거치지 않은 사항으로 이에 대한 어떤 통보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 단장이 언급한 해외 재송신 채널에 대한 더빙 규제 완화는 우리 방송계에 큰 파급력을 미칠 수 있다는 중요 사안이다. CNN 등 주요 해외 채널의 경우 더빙 규제 완화와 더불어 로컬(지역) 광고까지 허용해 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양질의 콘텐츠를 앞세운 해외 채널들이 국내 방송 시장을 잠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방송계에선 꾸준히 제기돼 왔다. 그러나 방송위는 지난달 23일 "방송은 국가 주권과 직결되는 언론미디어이기 때문에 개방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며 "IPTV 등 신규방송서비스에 대해서도 포괄적인 미래유보 입장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이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특히 FTA 협상단이 국내 방송시장의 판도를 뒤흔들 수 있는 카드를 꺼냈음에도 방송위는 소극적인 입장만을 견지하고 있어 방송위가 결국 FTA 협상에서 제 역할을 못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 내부 갈등으로 추진동력 약화 최민희 방송위 부위원장이 이 단장의 규제 완화 발언 3일 전인 6일에 열린 한미FTA 차관 회의에 참석했다는 사실은 이런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방송위는 지난 달 FTA 협상 관련 문건 유출의 의혹을 받으며 조창현 위원장이 최 부위원장에 대한 조사를 지시하는 등 협상을 두고 내홍을 치르기까지 했다. 결국 내부적 갈등이 협상에서 소외를 자초한 게 아니냐는 게 방송계 안팎의 지적이다. 김유진 민주언론운동연합 사무처장은 "FTA 협상 내부 문건 유출 파문 이후, 방송위가 FTA 협상에서 소외되고 있는 듯하다"며 "이 경우 소위 '빅딜'이라는 미명 아래 방송 시장 개방이 현실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그는 "FTA 기획단장이 규제 완화를 언급한 만큼 방송위가 유감을 표시하는 등 방송 시장 개방 불가를 다시 한 번 밝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신승한 방송위 공보실장은 이에대해 "방송 시장 개방 불가는 방송위의 변하지 않는 입장"이라며며 "방송위 관계자도 FTA 협상단에 참가하고 있는 만큼 방송위의 소외 문제 등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