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국어선생님에도 패배감 안겼던 천재작가

■ '별들의 고향'으로 떠난 최인호를 그리며<br>고2때 신춘문예 입선<br>신문연재 '별들의고향' 출간… 밀리언셀러 시대 열기도

'목의 선이 눈 부시게 하얀 소녀였다….'

어제 타계한 소설가 최인호가 겨우 중학교 2학년 때 썼던 연애소설의 첫 문장이다. 입주 가정교사인 가난한 명문대 학생이 자신이 가르치던 여고생과 연정이 싹튼다는 내용이다.


소녀는 폐병 환자였고 결국 그녀가 병으로 죽어 사랑을 이루지 못한다는, 다소 신파 냄새가 풍기는 소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기자는 이 소설을 읽고 한동안 패닉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글을 읽을 당시 기자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었고 1960년대 초반 글을 쓸 당시 작가 최인호는 까까머리 중학생이었다. 중학생이던 최인호는 이미 성인 작가 뺨치는 천재적 문재를 품고 있었고 기자는 그런 문재(文才)의 부재에 열등감을 느꼈다.

이런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비단 기자뿐이 아니었다.

다음은 최인호와 중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영화감독 이장호의 기억이다.

"중학교 때 국어시간이었다. 인호는 키가 작아 맨 앞자리에 앉았고 나는 덩치가 커 맨 뒷자리에 앉았다. 국어시간에 작문을 했는데 국어선생님이 인호에게 자기가 쓴 글을 일어나서 읽어보라고 했다. 키가 작은 인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낭랑한 목소리로 그 연애소설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철부지 우리들은 그저 연애 이야기가 재미있어 키득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기억한다. 우리가 키득거리던 순간 교단에 선 국어선생님의 얼굴에 스쳐 지나가던 표정을…. 나는 훗날 철이 들어서야 국어선생님의 그 표정은 감출 수 없던 패배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주머니 속의 송곳 같은 문재를 주체할 길 없던 최인호는 서울고등학교 2학년 재학 중 한국일보 신춘문예에서 소설 '벽구멍'으로 장원 없는 가작에 입선한다.

연세대 영문과를 졸업한 그는 청년 문화의 맨 앞자리에 있었다.

"신문 연재소설? 나한테 맡겨만 보라"고 호언하던 그는 조선일보에 연재하던 '별들의 고향'을 책으로 출간, 100만부를 팔아 치우면서 우리나라에 밀레니엄 셀러 시대를 열었다.


자신의 말이 허언이 아님을 증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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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그는 '바보들의 행진'을 일간스포츠에 연재했고 중학교 동창 이장호와 '별들의 고향'을 영화로 만들며 청년 문화를 이끌었다.

대중의 시선이 그에게로 집중되자 문단의 기성들은 그를 '통속 작가'로 폄하했다. 최인호는 자신을 비난하던 부류를 향해 "그래, 나는 통속 작가다. 그런데 그러는 너희들은 뭐냐?"라고 일갈하며 기성세대가 가진 재능의 빈곤에 비수를 들이댔다.

'문화 귀족주의'라는 전가의 보도로 자신의 명성을 폄하하려는 어설픈 시도에 일침을 가한 것이다.

1980년대 들어 '길 없는 길' '잃어버린 왕국' 등을 발표하며 전환점을 맞은 최인호는 1997년 한국일보에 '상도'를 연재하며 그의 작품에 종교라는 색을 덧칠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썼던 모든 작품을 집필할 때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무대를 찾아 여행을 떠났고 현장에서 치열한 취재로 글의 재료가 될만한 편린을 주워 모았다.

그런 그의 치열한 취재는 작가는 물론 기자들에게도 귀감이 될 만했다.

2011년 침샘암 투병 중에도 신작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펴낸 그는 7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새로운 변신을 보여줬고 동리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같은 변신이야말로 그의 청년정신 근저에서 솟아나는 창작욕의 발현이었다.

하지만 그는 아직 풀어놓지 못한 수많은 이야기 보따리를 등에 진 채 먼 길을 떠나갔다. 또박또박 선명한 그의 발자국마다 아쉬움이 고이는 이유다.

기자는 오늘 독자 여러분과 함께 '영원한 청년작가 최인호'를 기억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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