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거꾸로 가는 SOC 투자


이달 초 본사가 주최하는 한국건축문화대상 수상자들과 함께 싱가포르로 해외건축 탐방을 다녀왔다. 오랜만에 방문한 싱가포르는 아시아 금융허브라는 말에 걸맞게 그 사이 못 보던 건축물이 곳곳에서 위용을 뽐내고 있었고 도시는 여전히 활기로 가득했다. 출장길에 유독 눈에 띄는 것은 도시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는 크고 작은 공사들이었다. 특히 대규모 지하철(MRT) 공사가 도시 전역에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싱가포르는 세계적으로도 편리한 대중교통망을 갖춘 곳으로 꼽힌다. 웬만한 지역은 도시 동서남북으로 뻗어 있는 4개의 MRT(Mass Rapid Transit)를 통해 쉽게 오갈 수 있는데다 경전철인 LRT, 버스를 통해 도시 구석구석까지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그럼에도 싱가포르 정부가 대규모 지하철 공사를 벌이고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현지 관계자는 “매립을 통한 도시 확대 계획에 맞춰 당초 2020년으로 예정돼 있던 발주를 대거 앞당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1998년 미국발 금융위기 여파가 당연히 싱가포르에도 영향을 미쳤고 정부가 경기 침체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공사 발주 물량을 크게 늘렸다는 것이다. 무역이 핵심 산업인 싱가포르 역시 결국 불황을 단기간에 극복하기 위한 경기부양책으로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시설 확충과 과감한 규제 완화를 택한 셈이다. 한국은행 산업연관표에 따르면 국내총생산에서 건설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15.5%(2012년 기준)에 달한다. 이는 제조업 설비투자(9.5%)보다 높은 것이다. 이처럼 건설산업의 비중이 높은 것은 연관 산업이나 민간 소비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이 같은 효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건설, 특히 SOC 투자는 주요 선진국의 그것과는 역방향으로 주행하고 있다. 내년 예산에서 SOC 관련 지출이 크게 줄어드는 것은 물론 대부분 신규 투자가 아닌 계속 사업에 대한 지출이라고 한다. 이는 단순히 내년 한 해의 일만이 아니다. 지난 4년간 정부의 SOC 관련 예산은 지속적으로 감소하면서 거의 반토막 난 상태다.

멈춰선 SOC 투자는 현장 곳곳에서도 문제를 도출해내고 있다. 특히 가뜩이나 주택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설업체들로서는 쪼그라든 공공발주 탓에 ‘IMF 때보다 더 큰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실제로 이미 내로라하는 대형건설사들조차 경영난을 겪으면서 모그룹의 생존까지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다.


시장에 대한 장밋빛 전망과 무리한 저가수주에 따른 부메랑 효과이긴 하지만 건설투자 축소 역시 건설 산업의 역성장을 가속화하는 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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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내년 예산안에서는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복지 사업비마저 도매급으로 깎이면서 반토막 났다. 한편으로는 ‘복지’를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두고 예산을 쏟아 붓고 있으면서도 정작 핵심적인 주거복지 예산은 줄이는 이율배반적 정책을 펼치고 있는 셈이다.

날로 커지고 있는 빈부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적극적 복지 확대 필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현재의 정책 방향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복지’라는 블랙홀에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이 같은 상황임에도 정부 내의 분위기는 SOC 예산 확충의 필요성을 함부로 주장하지 못하는 듯하다. 여기에는 4대강살리기 사업으로 대표되는 지난 정부의 무리한 전시성 SOC 투자에 대한 반감이 깔려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잘못된 SOC 정책은 당연히 비판받아야 하지만 그것이 SOC 투자 자체에 대한 부정이 돼선 안 된다. 아직도 한국의 SOC 투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에 하위권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SOC는 선제적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 분야다. 현재 시점의 필요성이 아닌 20~30년 후를 내다보고 미리 투자하지 않으면 훨씬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경부고속도로 교통 분산을 위해 서울과 대전을 연결하는 중부고속도로를 건설할 당시 예산 낭비라는 지적이 잇따랐지만 지금은 그 필요성을 부정하는 목소리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지 않은가.

1930년대에 실시된 미국의 뉴딜정책을 8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주요 선진국이 침체된 경기 회복을 위한 유효한 정책 수단으로 삼고 있음을 다시 한번 되새겨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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