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김주동 <주>신원 대표(한국경제를 움직이는 전문경영인)

◎합리적 옷값 패션대중화 선언/거품빼고 제값 붙여 「노세일」 전략/중 등 동남아 자체상표 수출 추진지난해 9월 신원그룹 박성철 회장은 모태기업인 (주)신원의 특수사업본부장(전무)에 김주동 동양섬유전무를 전격 영입했다. 특수사업본부는 신원의 주력인 여성정장브랜드의 급성장에 제동이 걸려 캐주얼과 골프웨어쪽으로 브랜드를 다각화하기 위해 만든 신규팀. 그로부터 반년뒤인 지난 2월 김본부장은 신원의 대표이사 사장으로 파격적인 승진을 했다. 신원 임직원들은 『30년 역사상 최초의 과감한 발탁인사』라고 말한다. 김사장은 신원의 첫번째 전문경영인이라는 점도 주목을 끈다. 그동안 박회장이 대표를 겸했고, 김상윤 그룹부회장도 신원의 대표를 맡았지만 그룹운영을 관장하면서 패션사업을 함께 이끌었다. 그는 30년가량 패션 외길인생을 걸어온 인물로 청장년시절 끊임없는 도전과 모험, 시련과 좌절을 겪었다. 두번에 걸쳐 봉제무역업을 주선하는 에이전트로 활약했고, 한때는 섬유무역·제조업체를 경영한 바 있다. 서울대 섬유공학과를 졸업한 뒤 지난 71년 당시 「독립문」이라는 메리야스브랜드로 유명한 평안섬유에 입사, 불과 5년만에 수출·영업담당 부장으로 파격 승진하기도 했다. 그는 샐러리맨 생활을 청산하고 무역경험을 살려 스위스계열 「사이버 해거너」라는 종합상사의 한국지역 섬유수출 에이전트를 맡았다. 수출분야의 풍부한 경험과 해박한 지식을 밑천으로 지난 85년 「성지교역」이라는 의류제조및 수출업체를 차렸다. 한때 3천만달러를 수출해 91년 수출의 날에 대통령상을 받는등 탄탄대로를 걸었지만 내수에 진출하면서 자금부족으로 위기를 겪다 결국 파산하고 말았다. 김사장은 『당시 너무 자신감에 넘쳐 어떤 일을 해도 성공할 것 같았다』며 『자금여력이 없는 상태에서 무리하게 내수시장에 들어간 것이 화근이었다』고 회고했다. 이맘때 신학공부를 하기도 했다. 그가 요즘 관심을 쏟는 분야는 패션의 대중화. 신원은 지난 8월 잠실실내체육관에서 5천여명의 관객들을 초청해 2백여명의 모델이 출연하는 대형패션쇼를 열었다. 김사장은 『패션쇼는 디자이너 등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다』며 『대중화의 첫 걸음은 합리적인 옷값에 있다』고 강조한다. 처음부터 옷값을 높게 책정한뒤 세일과 할인판매를 하는 것은 브랜드 이미지를 실추시켜며 결국 채산성악화­재세일순으로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 김사장의 이같은 방침에 따라 신원은 올가을부터 20여개 신원브랜드중 여성정장 브랜드 3개외에는 「노세일」전략을 펴고 있다. 김사장은 경영방침으로 첫째로 정도경영을 꼽고 있다.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바른 길이 아니면 가지 말것을 직원들에게 누누히 당부하고 있다. 특히 고객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킬 것을 강조하고 있다. 전문화도 그가 강조하는 내용. 그는 최근 각 브랜드마저 별도로 움직이던 생산팀을 통합했다. 조만간 재단과 제품검사를 전문화하기 위해 재단센터와 검사센터를 설립할 예정이다. 장기적으로는 생산은 물론 디자인과 영업을 특화시키도록 별도 법인화하는 방안도 구상중이다. 그는 『올해말 부터 중국 상하이 등 일부 지역 백화점에 신원브랜드가 내걸릴 것』이라며 『앞으로 2∼3년안에 동남아지역에도 자체브랜드로 수출할 계획이다』고 말했다.<권구찬 기자> ▲47년 개성출생 ▲69년 서울대 섬유공학과 졸업 ▲75년 유림통상 무역부장 ▲85년 성지교역 대표이사 ▲96년 동양섬유 전무 ▲96년 (주)신원 특수사업본부장 ▲97년 〃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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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구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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