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한국IT의 赤旗條例

정승량 기자<정보산업부>

세계 자동차산업의 역사를 처음 쓰기 시작한 곳은 영국이다. ‘Auto(自)’와 ‘Mobile(可動 裝置)’이라는 말이 합쳐져 자동차를 뜻하는 ‘오토모빌(Automobile)’이라는 단어가 생겨난 곳도, 자동차가 처음으로 실용화된 곳도 그곳이다. 세계 자동차산업의 역사는 1830년께 W 핸목이 만든 10대의 증기자동차(버스)가 런던에서 정기 운행한 데서 시작됐다. 이 정기버스는 22인승에 평균속도가 시속 16~23㎞였는데 이때 영국의회에서 적기조례(赤旗條例)라는 법을 만든다. 골자는 ▦1대의 자동차 안에 3명의 운전수를 태울 것 ▦적기를 든 사람을 도보 또는 말을 타고 자동차 앞에서 가도록 해 통행인에게 경고를 줄 것 ▦밤에는 붉은 등을 든 선도자를 둘 것 ▦최고속도를 6.4㎞ 이하로 하고 시가지에서는 3.2㎞로 할 것 등이다. 이 조례는 마차를 끄는 말이 자동차에 놀라 폭주하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취지로 만들어졌다. 당시의 ‘기술혁명’을 영국인들이 얼마나 두렵게 받아들였는지 실감나게 하는 대목이다. 이 ‘골동품’ 같은 풍경이 IT 최강국이라는 한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도청정국을 기회로 지금 국회에서는 통신의 비밀이 최우선이라며 갖가지 법률들이 입법절차를 밟고 있거나 준비 중이고 이르면 연내 정기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국회의원들의 왕성한 의욕을 꺾을 뜻은 없다. 오히려 이 기회에 ‘IT기술의 그늘들’을 하나하나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다만 산업혁명에 이은 또 다른 혁명인 정보화혁명이라는 세계사적 대조류를 이끌고 있는 한국에서 자칫 ‘IT의 적기조례’가 나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산업혁명을 일으킨 당사자, 세계 자동차산업의 원조국인 영국은 지난 91년 우리나라보다 생산량이 줄어든 데 이어 자국 자동차회사가 하나가 없을 정도로 자동차 후진국으로 전락했다. 176년 후에 바라보는 지금 영국 ‘Mobile(자동차)’의 모습이 한국의 ‘Mobile(이동통신)’로 재연된다면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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