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5월 27일] '키코'의 기습… 中企 속수무책

‘재수 없는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 요즘 국내 중소기업이 처한 상황에 딱 맞는 말이다. 철강ㆍ펄프 등의 원자재값 급등으로 중소기업은 물건을 만들면 만들수록 손해라고 아우성이다. 오죽하면 ‘갑’의 관계로 언제나 상전이던 대기업에 반기를 들어 납품가 인상을 요구하는 단체행동에 나섰겠는가. 그 뿐만이 아니다. 최근 몇 달 새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유가는 중소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특히 휘발유 값마저 넘어선 경유값 급등으로 일부 운수업체는 일감이 있어도 아예 손을 놓고 있다. 새 정부 들어 불거진 쇠고기 파동은 또 어떤가. 미국산 쇠고기와 전혀 관련 없는 식품 관련 중소 프랜차이즈 업체들의 매출은 뚝 떨어지고 영세사업자인 음식점도 파리만 날리고 있다. 곳곳에서 이 상태로 지속되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이다. 인건비라도 줄이려고 종업원들을 자르니 가뜩이나 실업자도 많은 판에 일자리는 더욱 줄어들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키코’라는 ‘환율 악령’이 나타나 중소기업을 궁지로 몰고 있다. 키코(KIKOㆍKnock-In, Knock-Out)는 기업과 은행이 환율 상하단을 정해 놓고 계약 기간 중에 환율이 하단 밑으로 내려가지 않는 한 상단에 해당되는 환율로 달러화를 계약금액 만큼 팔 수 있게 만들어 기업의 환위험을 방지해주는 상품이다. 하지만 환율이 계약 당시 설정한 상단을 넘는 순간 키코 계약서는 기업들에 일종의 ‘노비문서’로 변한다. 계약 기간에 시장가격보다 낮은 환율로 보전해 주면서 손실을 입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이 불안한 환율의 위험을 피하려다 오히려 더 큰 위험에 빠진 것이다. 지난주 중소기업중앙회는 키코로 피해를 입고 있는 중소기업 사장들을 모아놓고 대책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나온 사장들은 한 목소리로 환율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정부와 강압적으로 계약을 요구했던 은행들을 성토했다. “키코 계약 기간이 2년이어서 내년 말까지 달러당 1,000원 중반대의 환율이 지속된다면 회사 존폐가 위협 받는 수준에 이르게 됩니다. 별도의 조치가 없으면 회사가 망할 수 있는 만큼 남아있는 계약 기간에 대해서는 정부 차원에서 무효화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매출의 60%를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중장비 수출 중소기업 사장의 얘기다. 또 다른 사장은 키코 때문에 도저히 일손이 잡히지 않는다고 말한다. “임원들 모두가 환율에만 신경 쓰고 있습니다. 회사의 앞날이 오로지 환율에 달려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특히 정부 당국자가 환율상승 시사 발언을 하면 가슴이 철렁합니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수출 중소기업 3분의1이 키코옵션 거래 경험이 있고 이 가운데 59%가 1억원 미만, 28%가 1억~10억원, 5.8%가 10억~50억원 미만의 손실을 입었다. 50억원 넘게 손실을 입은 업체도 있었다.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회사의 운명을 좌우할 액수다. 이 중 일부 업체는 주거래 은행의 권유로 충분한 이해 없이 키코에 가입했다가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 불공정계약 시비도 일고 있다. 이제 법정 싸움으로까지 비화될 조짐이다. 안타까운 것은 키코 문제가 개선되지 않으면 불안한 환율에 따라 중소기업 전체로 피해가 눈덩이처럼 확산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때문에 중소기업들이 주장하는 키코상품의 옵션조건 폐지, 해지조건 신설 등 불공정한 계약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만약 은행들의 강압적인 요구가 있었다면 비록 사적 계약일지라도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한다. 정부와 연구소 등의 올바른 환율예측도 필요하다. 출범 100일을 앞두고 있는 이명박 정부에는 첩첩한 현안들에 비추어볼 때 키코 문제가 그리 중요하지 않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경제가 어려워지면 가장 먼저 힘에 부치는 곳이 중소기업이다. 외부적인 악재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는 중소기업에 보호막을 만들어줘야 한다. 이제라도 제대로 된 약방문(藥方文)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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