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연기에 따른 후폭풍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금융시장을 강타했다.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가 추석연휴와 겹쳐 휴장이었던 관계로 비교적 여유 있게 23일 장에 임했던 외환딜러들은 환율이 막판에 급락하자 '허를 찔렸다'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암묵적으로 기대했던 외환당국의 '방어선'에 대한 기대감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외환시장 관계자들은 당분간 위험거래가 이어지면서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의 강세 행진이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랠리는 길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의 발표대로라면 미국 경제의 덜 확실한 회복세로 오는 10~12월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질 가능성이 높고, 특히 환율 메리트가 떨어질 경우 한국을 떠날 투자자금도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외국인 투자에 수출기업 달러물량 가세=23일 장 내내 환율을 밀어올린 힘은 외국인들의 주식 매수였다. 외국인들은 이날 거래소에서 2,982억원어치의 주식을 순매수하면서 지난달 23일부터 이어진 순매수 행진을 19일째 이어갔다. 최근 외국인들의 '바이코리아' 열풍은 그야말로 거세다. 금융투자업계와 블룸버그의 집계에 따르면 달러 기준으로 외국인의 한국 주식투자 연간 누적액은 지난 17일 현재 7억1,603만달러로 3월15일 이후 6개월 만에 순매수로 전환됐다. 현 추세대로만 이어진다면 원화 기준(현재 7,007억원 순매도)으로도 순매수 전환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막판 수출업체들의 달러물량 던지기도 가세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거주자의 외화예금 잔액은 8월 말 현재 410억2,000만달러로 사상 최대다. 대기업 수출입대금이 원화로 환전되지 않고 달러 그대로 예치된 탓이다. 이는 환율에 따라 언제든 시중에 풀릴 수 있는 달러물량이다. 시중은행의 한 외환딜러는 "오늘도 장 막판 묵은 네고 물량이 집중되면서 힘없이 환율이 무너졌다"고 말했다.
◇연저점 깰 가능성 열어놓아야=원ㆍ달러 환율이 당초 예상됐던 1,075~1076원선이 깨진 1,073원80전으로 마감하자 환율이 어디까지 떨어질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올해 연저점은 1월15일의 1,054원50전이다.
정경팔 외환선물 시장분석팀장은 "10월 양적완화 축소 분위기를 이끌어간다면 원ㆍ달러 환율 1,070원선이 지지되겠지만 12월로 연기될 것으로 인식된다면 연저점까지 도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했다.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도 "외국인 주식 순매수 동향에 따라 연저점 가능성을 열어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변수도 적지 않다. 미국의 연내 자산매입 축소가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변동성은 되레 높아졌다. 이주호 국제금융센터 자본유출입모니터링실 부장은 "시장의 예측대로 연준이 9월에 월 100억~150억달러씩 축소하기로 결정했다면 불확실성이 제거됐겠지만 이를 이연함에 따라 오히려 10~12월 변동성은 더 커지게 됐다"고 내다봤다.
변덕스런 국제자본의 흐름도 예의주시해야 한다. 정 팀장은 "양적완화 축소가 연기되면서 유로화를 팔고 아시아 통화에 투자하는 캐리 트레이드가 좀 더 진행될 여지가 생겼다"며 "일본 투자가들이 5주 만에 해외채권 순매수에 나서는 등 앤캐리 트레이드가 추가로 유발될 가능성이 커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