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3월 13일] 추억 모으기

유흥수(LIG투자증권 사장)

누구나 아끼는 물건 몇 개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것들은 값이 비싸거나 희귀하거나 유명하거나 오래됐다는 등 각양각색의 이유로 누군가의 애장품이 된다. 나 역시 나름의 이유로 소중히 여기는 물건들이 있다. 그 안에 담긴 추억이 미소를 짓게 하고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를 자극하는 감수성이 풍부한 것들이다. 누구에게 보여주더라도 특별한 물건이라는 공감을 이끌어내 주인을 기분 좋게 해주는 기특한 녀석들이기도 하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성적표ㆍ일기장ㆍ상장ㆍ임명장ㆍ수험표ㆍ신분증ㆍ명함ㆍ표창장 등을 빠짐없이 모아오고 있다. 산전수전을 겪어 누렇게 바랜 빛깔과 오래된 종이가 뿜어내는 세월의 냄새가 참으로 정겹다. 얼마 전 진행된 모 방송국과의 인터뷰에서 애장품을 소개해달라고 했을 때 이들도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이후 그 많은 것들을 왜 모았느냐는 질문을 여러 번 받았다. 수집과 정리정돈을 좋아하는 습벽의 결과라고 하는 것이 정답이지만 학창시절 성적이 좋았으니까 모으지 않았겠느냐고 대답하면서 한바탕 웃기도 한다. 가끔은 이들을 통해 새삼스레 추억 보따리를 하나하나 풀어보기도 한다. ‘학습용구를 갖춰주십시오’라는 가정통신문을 보니 어려웠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당시 우리집은 변변한 공책 한 권 살 형편이 못됐다. 일찍 홀로 되신 어머니는 값싼 백노지를 자른 후 실로 꿰매 공책을 만들어주셨다. 원래부터 낮은 품질에 50년이라는 세월의 무게까지 고스란히 업은 엄마표 수제공책이 이제는 수천년 전 유물처럼 보인다. 일기장을 넘기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표현은 단순하고 유치하지만 간혹 마을과 학교를 위해 봉사하겠다거나 광복절을 맞아 국가와 민족을 아끼고 사랑해야겠다는 등 여덟 살 꼬마로서 제법 대견한 글들을 써놓은 것이다. 인생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바쁜 일상과 기억력의 한계로 많은 부분을 잊고 산다.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 관련 있는 물건 하나쯤은 버리지 말자. 단순히 물건을 모으는 게 아니라 추억을 모으는 것이다. 훗날 조그만 물건 하나가 잊고 있던 아름다운 시절로 우리를 다시 초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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