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실천모임이 23일 내놓은 10개 실천 과제를 보면 공정거래와 관련해 그동안 시민단체 등에서 제기됐던 부분들이 모조리 담겼다. 특히 리니언시(자진담합신고 때 과징금 면제) 혜택을 축소하고 집단소송제를 다른 업종으로 대폭 확대하는 한편 하도급 위반과 기술탈취 등에 적용되는 징벌적 손해배상의 대상을 전방위로 넓히겠다고 나섬에 따라 대기업들의 영업 반경을 완벽하게 줄였다. 가뜩이나 공정거래위원회의 칼날에 주눅이 들어 있는 대기업들 사이에서 "공정위 무서워 사업 못하겠다"는 볼멘소리가 곳곳에서 터지고 있다.
과제들을 보면 우선 앞으로는 담합에 대해 자진신고를 해도 담합행위를 주도했거나 이를 통해 최대 수혜를 받은 기업은 지금과 같은 혜택을 누리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새누리당 전ㆍ현직 의원들로 구성된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이 23일 담합과징금 감면과 같은 리니언시 혜택을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모임은 대기업들이 담합행위를 저지르고도 리니언시를 악용해 과징금을 면제 받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현재 공정거래법상 리니언시 1순위자는 과징금 전액을, 2순위자는 50% 감경 받고 있다. 이에 따라 모임은 리니언시 제한 정도와 자진신고 시기에 따라 감면 규모를 차별적으로 적용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모임 계획대로 법개정이 이뤄지면 담합행위에 대한 자진신고 유인이 떨어질 수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 "주도자에 대한 리니언시 혜택 축소 주장은 오래 전부터 나온 이야기지만 자진신고자의 유인을 떨어뜨릴 위험이 있기 때문에 우려된다"면서 "좀더 다양한 관점에서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임은 또 재벌의 경제력 남용을 막기 위해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행 증권 부문에만 허용된 집단소송제를 다른 업종으로 대폭 넓히고 하도급 위반과 기술탈취 등에 적용되는 징벌적 손해배상도 가격담합, 대기업 일감몰아주기, 하청업체에 대한 단가인하 등 대기업의 불공정행위 전반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소비자가 공정위를 거치지 않고 소송을 통해 불공정거래 행위 중단을 요구할 수 있는 사인(私人)의 금지청구제도 도입도 검토하기로 했다. 4대강 담합사건 등에서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일었던 공정위의 검찰 전속고발권은 없애고 위법행위가 의도적으로 이뤄진 경우 고발을 의무화하는 방안도 논의하기로 했다.
재계는 여당의 이 같은 움직임에 즉각 우려를 나타냈다. 특히 일감 몰아주기 관련 징벌적 손해배상 확대 등 공정거래법 개정 시도에 대해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환익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정책팀장은 "기업의 일감 몰아주기는 수직계열화 및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데 이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확대하는 것은 기업활동을 크게 옥죄는 규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기업 내부거래가 시스템통합(SI) 등 기업정보를 담당하는 업무에서 주로 이뤄지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방안"이라고 지적했다.
재계는 또 '사인의 금지청구제도'에 대해서도 담합 등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판단은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데 이를 소비자에게 허용할 경우 남용이나 경쟁자에 의한 악용 등으로 기업의 영업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