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국민은행에서 1조원 규모의 허위 입금증 등 사문서가 위조 발급된 사고가 발생했다.
국민은행의 한 영업점 지점이 부동산개발업자와 짜고 은행에 실제 있지도 않은 입금 및 지급 예정 확인서 등을 발급해 부동산개발업자가 사기를 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다.
kt ens 협력업체의 사기대출 사건이 발생한 데 이어 또다시 사문서 위조 사건이 적발되면서 금융계의 내부관리에 총체적 부실이 거듭 확인되고 있다는 비판이 비등하다.
특히 국민은행은 대규모 정보유출과 도쿄지점 비자금 의혹 등에 이어 직원 사문서 위조 사건까지 발생해 더욱 어려운 처지가 됐다.
금융당국은 허위 입금증 같은 유사 사례가 있는지 점검하라고 모든 은행에 긴급 지시했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은행 직원인 이모(52·팀장)씨는 부동산개발업자 강모씨에게 9,709억원 규모의 허위 입금증 등을 발부해줬다. 국민은행은 이 사실을 지난 4일 발견해 금감원에 긴급 보고했다.
국민은행은 지난달 30일 서울 모지점에서 제보를 받아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고 당국에 보고하는 한편 사기를 공모한 이모 팀장을 대기 발령한 뒤 검찰에 고발했다.
드러난 사문서는 예금이 입금되면 예금주의 요청에 따라 대금을 지불하겠다는 내용의 '예금 입금증 및 지급예정 확인서' 3,600억원과 부동산개발업자의 대출신청을 받아 심사를 진행하겠다는 내용의 '문서발급 및 대출예정 확인서' 등 6,101억원 규모의 임의확인서 10건 등이다. 아울러 제3자의 차용자금 8억원을 보관하고 있다는 내용의 현금보관증 8건도 발급됐다.
허위 입금증 등 사문서로 위조된 금액은 총 9,700억원을 넘는다.
이들 문서는 국민은행 법인이나 지점의 정식 인감을 사용하지 않고 이씨의 개인 도장과 사인을 이용해 작성됐다.
이 직원이 만든 허위입금증은 정교하지 않고 육안으로 볼 때 가짜임을 알 수 있을 정도여서 비교적 초기 단계에서 적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이씨가 발급한 확인서는 은행에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황당무계한 양식으로 법적 효력이 없다"면서 "임의로 허위사실을 확인해줌에 따라 사기에 악용될 우려가 있어 검찰에 고발했다"고 설명했다. 은행에서 공식적으로 발행하는 것은 잔액 증명서로, 입금증이란 증명서는 아예 없다. 이 때문에 은행에서 이 입금증을 근거로 대출을 해주는 일은 발생할 수 없다는 게 국민은행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런 허위 확인서를 기초로 부동산개발업자가 투자자 모집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선량한 투자자가 사기꾼의 농간에 놀아 날 수 있다는 얘기다.
국민은행의 신고를 받은 금융 당국이 그 즉시 전 은행에 비슷한 사례가 있는지 점검할 것을 긴급 지시한 것도 사안이 간단치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국민은행으로부터 1조원 규모의 허위 입금증 발부 사고가 있었다는 보고를 받고 국민은행이 고발 조치하도록 했다"면서 "이미 국민은행에서 고발 등의 조치를 했기 때문에 별도의 특별 검사를 하지 않을 방침이지만, 이런 수법이 다른 은행에서도 이용됐을 가능성이 있는 만큼 모든 은행에 허위입금증 발부 여부를 점검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그는 "허위입금증 발부는 일선 지점 직원이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향후 일선 지점에 대한 내부 통제도 강화하라고 지도했다"고 덧붙였다.
금감원이 긴급히 은행 점검에 나선 것은 KT ENS 협력업체의 1조8,000억원대 대출 사기 사건에서 보듯 하나은행 등 거의 모든 시중은행과 저축은행이 연관됐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도 매출 채권에 대한 관리가 소홀한 틈을 타 인감 등을 위조한 경우였다.
이처럼 또다시 국민은행에서 내부통제 부실 사고가 발생함에 따라 향후 국민은행에 대한 제재 수위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해 11월 국민은행은 국민주택기금 위탁업무에 대한 관리 소홀로 일부 직원이 2010∼2013년 주택채권의 원리금 110여억원을 횡령하는 사건이 적발됐다. 이 때문에 국민은행은 이달부터 3개월간 청약저축 및 주택청약종합저축의 신규 가입자 모집과 국민주택채권 신규 판매 등이 중지된 상태다.
또 지난해 도쿄지점에서 5,000억원대 부당 대출 혐의로 당시 도쿄지점장 등이 구속돼 조사를 받고 있으며, 국민카드의 5,000여만명 고객 정보 유출로 국민은행도 1,000여만명의 고객 정보가 빠져나가 금융당국의 제재를 앞두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국민은행에서 계속 직원 관련 사고가 발생하고 있어 주시하고 있다"면서 "내부 통제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 금융계 고위 관계자는 "국민은행 입장에서는 한 번 잃은 신뢰를 회복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데, 계속해서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어 설상가상의 상황"이라며 "특히 금융산업 전체로도 모럴 해저드에 대한 고객의 질책이 커질 것으로 보여 금융산업의 내부통제 문제가 더욱 시급하게 됐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