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집행전까지 수개월 돈가뭄 불가피… 채무 경감 청사진도 안갯속

■ 그리스·채권단 구제금융 협상 합의

그렉시트 막았지만 사태 수습 첩첩산중



원금 탕감 대신 금리인하·부채 스와프 예상 불구

9월까지 대규모 나랏빚 상환만기 줄줄이 이어져


단기차입금 브리지론 적법성 논란 등 변수 적잖아


그리스에 대한 3차 구제금융 협상 개시를 놓고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정상들이 17시간의 마라톤 협상 끝에 극적인 합의에 이르면서 그리스 사태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됐다. 지난주 말 유로존 재무장관협의체인 유로그룹의 합의 내용을 미뤄볼 때 그리스와 채권국 정상들의 이번 합의로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Grexit) 위기는 수습 국면으로 반전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 3차 구제금융 집행 이전까지 길게는 수개월간 이어질 공백기간 동안 그리스의 돈 가뭄을 해소할 단기차입금인 '브리지론'의 조달 방안이 여전히 불투명해 불안의 불씨는 여전히 남게 된다. 그리스 재정위기가 되풀이되는 원인으로 지목되는 과도한 채무 부담을 어떻게 덜어줄 것인가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청사진이 아직 나오지 않아 향후 적지 않은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단 그렉시트는 막았지만 그리스 사태가 봉합되기까지는 여전히 첩첩산중인 셈이다.

◇막판 변수가 뭐였길래=유로존 정상들이 13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17시간이 넘는 협상 대장정을 이어갈 정도로 막판까지 애를 태우게 했던 변수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3차 구제금융 단행시 국제채권단 일원 중 국제통화기금(IMF)의 개입 수용 여부다. 둘째는 구제금융에 대한 그리스의 담보제공 문제였다.


이 중 IMF 문제는 정치적·정서적인 문제에 가까웠다. IMF는 지난 2010년 그리스가 재정난에 처해 총 두 차례의 구제금융을 받는 과정에서 그리스가 이행해야 할 고강도 재정긴축 등의 경제개혁 방안을 입안하고 요구했던 주인공이다. 당시에는 그리스의 방만한 재정지출과 세금수입(세수)결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불가피하다는 국제적 여론이 우세했다. 하지만 수출보다는 내수에 의존하는 그리스의 경제구조 등을 감안할 때 과도한 재정긴축이 결과적으로 경제 저성장으로 이어졌고 이것이 다시 세수를 줄여 재정수지를 압박해 빚더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고 말았다는 비판이 최근 확산되는 추세다. 심지어 IMF조차 최근 한 보고서를 통해 그리스의 부채를 탕감해줘야 한다며 사실상 기존 경제개혁안의 실패를 자인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반면 IMF가 향후 그리스의 경제개혁 이행 여부 등을 감시하는 역할 등을 해야 한다는 국제채권단의 의견이 맞서면서 막판까지 협상 당사자들은 애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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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보제공 문제는 다소 기술적 문제였다. 채권단은 그리스가 앞으로 부도를 낼 위험이 있으므로 구제금융의 대가로 500억유로 상당의 자산을 담보로 제공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해당 자산의 관리는 룩셈부르크 소재 계좌를 통해 관리하도록 하자는 주장도 곁들여졌다. 이에 대해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강력히 반발했으며 최종 협상 국면에서 채권단이 다소 양보를 검토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채무 경감 방안은=유로그룹은 지난주 말 협상 결과 그리스에 대해 채무 원금 탕감은 불가하지만 채무 경감을 해주는 것은 가능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쉽게 말해 대출금리 부담을 낮춰주거나 원금상환 만기를 미뤄주는 등 간접적인 방법으로 부채상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고 당근을 내민 것이다. 당초 치프라스 총리는 강력하게 채무 탕감을 요구했으나 실무협상 당사자였던 유클리드 차칼로토스 그리스 재무장관은 협상장 안팎에서 채무 경감을 수용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발언을 여러 차례 하면서 절충의 계기를 마련했다.

구체적인 채무 경감 방안에 대해 유럽의 싱크탱크인 브뤼헐은 올초 6가지 시나리오를 정리해 발표했다. 이는 △유로안정화기금(ESM) 대출로의 환승 △구제금융 금리 인하 △부채 스와프 △구제금융 만기 연장 △유럽재정안정화기금(EFSF) 대출 만기 연장 △예비 민영화 등이다. 원래는 7가지인데 그중 두 가지가 사실상 비슷한 성격이어서 서울경제신문은 총 6가지로 재분류했다.

이 중 가장 유력한 것인 ESM 대출로의 환승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양적완화를 위해 매입했던 기존의 그리스 국채를 ESM에 되팔고 ESM이 그리스에 다시 대출해주는 방식이다. ESM의 대출금리는 연 1% 수준이므로 그리스로서는 시중금리로 발행했던 기존 국채를 갚는 것보다 이자를 절감할 수 있다. 차칼로토스 재무장관 역시 취임 직후 가진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이와 비슷한 방식을 언급한 바 있다.

또 다른 방식은 기존의 1차 구제금융 금리를 직접 깎아주는 방식이다. 1차 구제금융은 '유리보(유럽은행 간 대출금리)'에 가산금리를 더하는 변동금리 방식인데 초기에는 최대 연 4%였다가 현재는 0.5%까지 내려간 상태다. 브뤼겔은 이 가산금리를 제로 수준까지 낮춰도 채권단이 손해를 보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다만 이런 직접적인 이자율 인하는 상대적으로 착실히 원리금을 상환했던 다른 구제금융 이용국가들의 반발을 살 수도 있다. 따라서 오는 2041년인 1차 구제금융 만기나 평균 30년인 2차 구제금융 만기를 10년 더 늘려주는 방식으로 간접적으로 상환 부담을 덜어주는 방식 등도 가능한 카드로 꼽힌다.

◇그 밖의 변수는=또 다른 복병들도 만만찮다. 우선 9월까지 연달아 다가오는 대규모 부채상환을 돕기 위해 그리스에 급전을 어떻게 해줄지에 대한 문제다. 현재 ESM이나 EFSF 등을 동원한 브리지론 지원 가능성 등이 거론된다. 그러나 이 같은 지원은 ESM 조약상 적법한지 논란이 될 수도 있다. 3차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유로존이 내세운 경제개혁안을 그리스 의회가 얼마나 충실히 이행할 수 있을지도 변수다. 물론 지난주 말 그리스 여권은 야권의 지지로 의회에서 해당 개혁안 수용을 압도적 표차로 의결했으나 여전히 여권 내 강경파들이 많고 여론의 반발도 적지 않아 이 벽을 어떻게 넘느냐가 당장 치프라스 총리가 맞닥뜨린 과제다.

@sed.co.k


민병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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