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판사가 쓰는 법이야기] <21>마약이 뭐길래…

가족·친구도 외면한 아픈 사연에 가슴이 찡~<br>유혹·고통서 빨리 벗어났으면…



마약사건 전담 항소심 재판부에 있으면서 필로폰, 대마초, 본드 등과 관련된 여러 피고인들의 사연과 만나고 있다. 지난 여름 어느 날, 서울구치소로부터 우리 재판부에 한 통의 건의서가 도착하였다. 새로 접수된 마약 사건 피고인에 대해 출산이 임박하였으니 구속집행을 정지하여 달라는 내용이었다. 재판부에서는 한편으로 구속집행을 정지하면 아이를 출산한 후 도주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가 들기도 하였지만, 신문기일에 아이를 출산하여 키우겠다는 진술을 듣고 구속집행을 정지하는 결정을 했다. 어느덧 가을이 됐다. 피고인은 공판기일 혹시 불출석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와 달리 예정된 시각에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피고인에 대한 심리를 마치면서 선고결과에 따라 다시 구금될 수 있는데 출산한 아이는 누구에게 맡길 것인지 묻자, 피고인은 심문기일 때처럼 담담한 표정으로 아이를 맡길 사람이 없으니 구치소에서 자신이 키우겠다고 했다. 이후, 재판부는 아이를 출산한지 얼마 되지 않는 피고인을 다시 구금시키는 것에 마음이 무거웠지만, 범행 내용이 무겁고 집행유예 결격자인 점을 고려해 1심과 마찬가지로 실형을 선고하기로 했다. 2주 후의 선고기일, 피고인은 포대기에 갓 태어난 아이를 업고 와 있었다. 재판부가 피고인에게 형을 선고하고 구속집행정지를 취소한다고 고지하면서 다시 구속된다는 사실을 누구에게 알려줄지 물었다. 그러자 피고인은 담담한 표정으로 가족들에게 다시 구금될 것 같다고 말하고 왔으니 괜찮다고 하며 아기기저귀가 든 가방 등 손가방 몇 개를 들고 구속 피고인 대기실로 들어갔다. 마약이 뭐길래, 임신한 피고인이 마약을 하게 되고, 갓 태어난 아이와 함께 구치소에 들어가게 되었는지…. 어느 피고인이 법원에 제출한 반성문에서 다음과 같은 문구를 읽은 적이 있다. ‘마약에는 가족도, 친구도 없다.’ 아이와 함께 구치소에 들어가는 피고인, 수 차례의 마약 범행으로 이혼하게 되었다는 피고인, 수사기관에 마약을 제공해 준 친구의 신원을 밝혀서 구속된 친구와 원수가 되었다는 피고인, 수 차례의 마약 범행으로 더 이상 마약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었다는 피고인 등의 사연을 보면서 이 문구가 무슨 뜻인지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피고인의 선처를 바란다는 그 아내의 탄원서, 증인으로 출석해 모두 제 탓이라고 말하면서 눈물짓는 그의 어머니, 이제는 자신을 수사기관에 제보한 친구를 원망하지 않는다는 피고인 등을 보면서, 법정에 선 피고인들이 다음부터는 마약의 유혹과 그로 인한 아픔에서 꼭 벗어날 수 있기를 조심스럽게 기대해 본다. 다시는 마약 범행을 하지 않겠다는 피고인들의 다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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