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세표를 쳐다보기도 싫습니다. 보면 짜증만 납니다.”
종합주가지수가 연일 급등하면서 16개월여 만에 800선을 넘어섰지만 국내투자자들의 반응은 썰렁하기만 하다. 남의 나라 얘기 같다는 분위기다. 지수는 올랐지만 별로 먹은 게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분위기는 5일 800 돌파 장세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외국인만 주식을 샀을 뿐 개인투자자들은 오히려 팔고 시장을 떠났다. 이경환 대신증권 강남역지점장은 “지수가 올라가도 객장의 분위기는 냉랭하다”고 말했다.
국내투자자들이 강세장을 남의 일인 양 쳐다만 보는 사이 지수 800선 돌파의 과실은 고스란히 외국인에게 넘어갔다. 올들어 오로지 외국인만 주식을 사들였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은 올 들어 거래소시장에서 모두 11조3,808억원어치의 주식을 사들였다. 반면 개인들은 5조7,491억원어치, 기관은 7조2,730억원어치 등 13조221억원어치를 내다팔았다. 연초 635포인트에서 805포인트까지 상승한 주가의 차익을 외국인들만 누리고 있는 것이다.
◇외국인 주식평가차익만 44조원 올려=외국인의 국내주식 보유비중은 이미 40%를 넘어선 데 이어 연일 사상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외국인들이 보유한 상장주식의 시가총액은 지수가 저점을 기록했던 3월 76조원 수준이었지만 10월 말에는 131조원으로 무려 59.4%나 증가했다. 이 기간 중 외국인들은 10조원이 넘는 국내주식을 사들였으며 이를 통해 무려 45조원에 달하는 평가차익을 남겼다.
외국인들이 나 홀로 지수를 끌어올리며 수익을 독점한 이유는 세계경제 회복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흔들림 없이 매수세를 이어갔기 때문이다. 오현석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외국인들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증시가 세계경기 회복에 따라 가장 큰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하고 지속적으로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며 “경기회복에 확신을 갖지 못하는 국내투자자들과는 상반된 모습”이라고 말했다.
◇국내투자자, `풍년 거지`=종합주가지수가 800선에 올라섰지만 이 같은 상승세를 타지 못한 종목들이 즐비하다. 대부분 개인들이 선호하는 종목이다.
지수가 연중최저치를 기록한 3월 중순 이후 11월 초까지 종합지수 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종목은 전체 상장주식의 72%에 해당하는 512개에 달한다. 더구나 주가가 당시보다 하락한 종목도 전체의 24%인 162개에 이른다. 상황이 이러니 지수는 올라도 개인은 먹은 게 없다. 오르는 지수만 쳐다보며 허탈해할 수밖에 없는 게 우리 증시의 현주소다.
김학균 굿모닝신한증권 애널리스트는 “외국인이 일부 대형주만 사들이며 지수를 끌어올리다 보니 외국인이 사는 종목만 오르고 개인들이 선호하는 종목은 대부분 이번 랠리로 인한 수혜조차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개인들의 증시기피현상 언제까지=증시가 추가 상승하기 위해서는 국내투자자들이 증시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지만 언제 돌아올지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답변을 내놓지 못한다. 먼저 국내경기가 살아나고 있다는 신호가 나와야 돌아올 것이라고 추정할 뿐이다.
부동산대책 및 배당투자세제혜택 확대 등 시중자금을 주식시장으로 돌리기 위한 정부의 대책이 잇따르고 있지만 큰 효과가 없는 것도 경기회복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미래의 경기회복 기대감에 과감하게 베팅을 하는 외국인들의 투자전략과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게다가 개인들은 과거 강세장에서 막바지에 참여했다가 외국인들의 매물을 받아주며 손해를 본 아픈 경험이 있다. 2001년 미 9ㆍ11테러 이후 외국인들이 줄기차게 사들이면서 지난해 2~3월 종합주가지수가 800선을 넘어서자 개인들은 주식매수에 나섰지만 외국인들의 매도세로 주가는 내리막길을 걸었던 기억이 아직 대다수 투자자들의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다. 국내투자자들이 매도로 일관한 것은 한마디로 이번에는 당하지 않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증시의 안전판 역할을 담당해야 할 기관들 역시 개인들의 신규자금 유입이 단절된 상황에서 제 역할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재용기자 jylee@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