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시마들은 나가있어라"㈜동보주택건설 조영숙 사장이 껄걸 웃으며 기자를 따라 사장실로 들어오는 남자 직원들에게 면박을 준다.물론 30여명의 직원 중 수적으로는 남성직원들이 우위에 있다. 그러나 사장, 감사, 이사, 기획실장 등 소위 핵심요직은 여성들이 맹활약하고 있어 동보주택건설을 소개하기 위해서는 여성 직원들이 앞에 서야 하기 때문이란 것이 조사장의 일갈이다.
동보는 국내 건설사중에는 보기 드물게 여성이 사장 및 주요 임원을 맡고 있는 연매출 300억원 규모의 아파트 중견건설업체. 1982년 창립이래 18개 단지 3,200가구의 아파트 및 다세대주택을 성남과 원주에서 지어왔으며 이번 10월에는 용인 동백 택지개발지구내에 480가구를 분양준비 중이다.
"건설업계가 워낙 '노가다'판이어서 금녀의 구역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집은 누구보다도 여자가 잘 안다는 생각에서 자신감을 얻게 됐다"고 조사장은 15년간의 초등학교교사 생활을 접고 건설현장에 뛰어든 배경을 설명한다.
CEO는커녕 여성임원도 보기 힘든 건설업계에서 여성이 '꽉 잡고' 있는 동보의 경영은 남다른 데가 있다. "나는 무리하게 사업을 벌이고 분양 안될까 봐 전전긍긍하는 경영은 안 합니다. 행여 내가 무리라도 할라치면 다른 직원들이 말립니다"라고 조사장은 경영스타일을 설명한다.
'여걸'처럼 호탕한 조 사장이지만 경영에서는 여성 특유의 꼼꼼함이 어쩔 수 없이 드러난다.
안정중시형 경영스타일이 여성 경영의 단점으로 지적되곤 하지만 IMF라는 시련기에 안전경영의 진가는 빛났다. 이 덕택에 중소 건설업체뿐만 아니라 대형 업체들도 휘청 거릴 때, 동보는 감원ㆍ감봉이나 은행 차입없이 IMF를 무사히 통화할 수 있었던 것.
경영에서 뿐만 아니라 아파트를 기획하는 데서도 여성의 아이디어는 제 역할을 톡톡히 한다. 동보는 원주에서만 12차에 걸쳐 3,000가구를 공급해왔다.
비록 대형건설업체의 사업규모에 비하면 많지 않은 물량이지만 원주에서는 동보 노빌리티가 유명 건설업체의 브랜드만큼이나 지역주민의 신뢰를 받고 있다는 게 최희승 기획실장의 자랑이다.
아파트 기획과 설계를 책임지고 있는 최 실장은 "여성들이 주도적으로 기획하고 설계 아이디어를 내다 보니 주방이 남다르게 개선됐다"며 자부심을 표현했다.
80년대에 원터치 수도꼭지를 도입하고, 찬장 코너의 활용도를 높이는 등 주부들의 입장에서 주방을 설계해 인기를 끌었다고 덧붙였다.
최근 들어서는 단지 내 100~200평 가량의 텃밭을 만들어 주민들이 모일 수 있는 구실과 장소를 마련해주고 주차장을 지하로 넣고 녹지를 넓히는 등 인간과 자연 친화적인 아파트 건설을 모토로 삼고 있다.
기획ㆍ설계 후에는 직접 시공을 하기 때문에 현장 관리, 감독 업무도 이들 여성들의 몫이다. 특히 회사를 설립할 때부터 함께 해온 채순석 이사는 실무적인 영역에서 총괄업무를 맡고 있는 맡고 있다.
채 이사는 "20년 동안 건설 실무를 해오다보니 이제는 어느 전문가만큼이나 아파트 건설을 꿰고 있다"고 말한다.
공사가 진행될 때는 사장과 이사가 직접 현장을 일주일에도 수 차례 방문, 벽돌 한장까지 체크한다. 특히 공사가 마무리 된 후 점검하는 작업은 꼼꼼함이 몸에 배어 있는 여성들이 현장소장보다 뛰어나다는 게 중론이다.
여성으로서 건설업계에서 일하기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예전에는 워낙 이쪽에서 일하는 여자들이 적어 업무상 만나도 남자로 바꿔달라, 높은 사람을 대라는 경우가 많았으나 이제는 인식이 많이 바뀌어 일하기 훨씬 편해졌다"고 이들 여성들은 입을 모은다.
특히 여성이 사장이고 여성동료들이 많다 보니 가정, 육아 문제에 있어 이해해주는 면이 이 회사의 장점이라고 말한다. 또한 권위적인 조직문화 대신 직원들이 서로를 언니, 아들, 딸처럼 한 가족으로 생각하는 가족적인 분위기 또한 다른 회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조직문화다.
1년에 한번씩 전직원이 가족과 함께 해외여행을 가는 등 직원의 가족까지 한가족으로 포용하는 사내분위기 때문에 가정에서도 지방 출장과 같은 회사일을 잘 이해해준다고 동보의 여성들은 전한다.
'거창하거나 화려하진 않지만 실속 있고 살기 좋은 집을 짓는 것'을 모토로 하는 이 집 지어 주는 여자들이 다음에는 어떤 집을 선보일지 기대해본다.
이혜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