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관광부가 스크린쿼터(한국영화의무상영일수)축소 방침을 시사함에 따라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했던 한미투자협정(BIT)에 전환점을 맞이하게 됐다.
스크린쿼터는 미국과의 통상 확대를 위해 선결조건이라며 재계가 줄기차게 축소를 주장해 왔던 부분. 하지만 영화계는 이른바 ‘문화적 예외’를 주장하며 축소에 반대 입장을 보여왔다. 경제계와 문화계의 대리전 역할로 진행돼 왔던 셈이다.
논란의 핵심이었던 BIT가 미국과 한국의 통상 현안으로 급부상한 것은 사실상 지난해부터다. 헐리웃 영화사들은 로비스트를 동원해 워싱턴 정가에 한국내 미국 영화의 상영비율을 높여달라며 압력의 강도를 높였다. 같은 기간 한국내 분위기도 급속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특히 한국영화의 점유율이 지난해 52.9%로 절반을 넘어서고, 올 1ㆍ4분기 72.6%까지 급등하면서 한국내 여론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특히 재정경제부를 비롯한 시장주의자들은 대외 개방 분위기에 맞추기 위해서는 스크린쿼터의 축소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재경부 관계자는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넘는 국가들중 자국 영화에 대한 스크린쿼터를 유지하는 곳은 한국과 그리스(28일)뿐”이라며 개방의 필요성을 밝히기도 했다.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도 지난 4월 정례 브리핑에서 우회적으로나마 스크린쿼터 축소와 관련한 전향적인 입장을 보였다. 정부내 이 같은 개방 분위기가 확대되면서 재계의 목소리도 커지기 시작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해 회장단 회의를 열때마다 스크린쿼터 축소를 통해 조기에 BIT를 체결할 것을 요구해왔다. 전경련 고위 관계자는 “우리 영화의 수준도 어느 정도 괘도에 올라섰고, 경제적 가치 측면에서 얻는 실익이 훨씬 큰데 스크린쿼터 현행 유지를 집착하는 것은 소탐대실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재계가 이처럼 BIT 체결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에 따른 우리 경제의 경제적 득실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스크린쿼터 축소론자들은 국내 영화의 규모는 5억달러 가운데 미국 영화는 2억달러에 불과한 반면, 대미 수출액은 330억달러에 달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는 BIT가 체결될 경우 연간 32억4,000만달러의 외국인 직접투자가 늘어나고 국내 총생산은 1.38%가 늘어날 것이라고 추산하고 있다.
올해 5%대를 기점으로 내년부터 6%대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는 정부로서는 스크린쿼터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이 같은 성장률 목표를 맞추기가 힘든게 현실이다.
물론 문화부의 이 같은 입장 표명에도 불구하고, 당분간은 축소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스크린쿼터의 현행 유지론자들은 “미국과 쌍무협정을 맺은 37개국 가운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은 하나도 없고 모두 경제 규모나 대외신인도가 떨어지는 동구나 아프리카 빈국들이 대부분”이라며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상당수 시민 단체들도 이 같은 입장에 동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한편으로 BIT 체결과 관련된 정부 부처간 입장 조율 작업은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로서도 이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장기화되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1~2개월여의 정부내 입장 조율을 거쳐 늦어도 하반기안에는 한국과 미국간에 BIT 체결 협상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