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눈치보기 규제완화 ‘그만’/김인규 KDI 연구위원(서경논단)

대선의 계절이 요란하게 다가오고 있다. 대권을 꿈꾸는 용들은 너나없이 규제개혁을 소리 높게 외친다. 「규제혁파」라는 언어의 인플레이션까지 낳은 그들의 그러한 외침은 그러나 대부분 원론적인 수준에서 맴돌고 있을 뿐이다.대권을 꿈꾸는 정치인들이나 그들의 눈치를 살펴야 할 고위 공직자들은 잘 알 것이다. ○대부분 원론서 빙빙 「개혁」이라는 단어가 따라붙는 정책들이 얼마나 값비싼 대가를 요구하는지, 이익집단의 기득권 침해가 얼마나 많은 표를 잠식하는 지를. 그렇다고 해서 여론을 주도하는 식자층이나 언론의 눈치를 안 볼 수도 없는 것이 그들의 입장인데 이러한 고민을 절묘하게 해결해 주는 방법이 바로 값싼 정책의 도입이다. 그렇다면 규제개혁과 관련된 값싼 정책에는 어떠한 것이 있는가. 가장 최근의 예를 들자면 정부와 신한국당에서 입법추진을 서두르고 있는 가칭 「규제개혁기본법」이 그것이다. 지난날 「국민교육헌장」제정시에도 그러했듯이 이 법의 기본 취지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더구나 규제개혁 작업에 큰 성과를 보인 미국, 영국, 뉴질랜드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조차 명문화된 적이 없는 법이라 이 법의 성안을 담당한 공무원들은 자부심마저 느끼는 듯하다. 법이 법으로서의 기능을 다하기 위해서는 법을 준수하는 비용과 집행하는 비용이 높지 않아야 한다. 현실을 외면한 법은 그 높은 준수비용 때문에 국민이나 기업들의 저항에 봉착하게 된다. 이 경우 그 법을 강제로 집행하려 들면 집행비용이 너무 높아지게 되고 따라서 정부는 집행을 포기하게 된다. ○기득권부터 제거해야 규제개혁기본법을 준수해야 할 당사자가 공무원이라 그랬는지 아니면 준수비용이 너무 높다고 생각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이 법은 집행을 위한 강제규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혹평하자면 출발부터 사문화를 염두에 둔 법이라는 느낌을 준다. 백번을 양보해서 입법과정에서 강제규정을 추가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 법의 핵심사항인 「규제일몰제」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매년 2천3백여건의 규제를 심사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인력으로는 50여건 정도의 법률 재개정을 심사하는 것도 벅차다고 한다. 낮은 준법의식이나 집행실적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많은 문제를 값싼 입법으로 해결하려 든다.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들이 정말로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염려한다면 인기에 영합하는 값싼 입법보다는 고통스럽더라도 실질적인 개혁작업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최근 문제가 되었던 단순 의약품 슈퍼 판매를 예로 들어보자. 지난달 5일 공정거래위원회는 규제완화 및 국민생활 편의도모를 위해 드링크 소화제와 같은 단순 의약품의 슈퍼 등 소매점 판매를 허용할 것임을 공식발표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와 이익집단인 대한약사회가 의약품 오남용 방지를 이유로 거세게 반발하자 5일만에 그 발표를 철회하고 말았다. 사문화가 예정된 규제개혁기본법보다는 단순 의약품의 슈퍼 판매가 국민 후생증진에 더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정치인이나 규제개혁 당국자는 알아야 한다. 그것을 알고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규제개혁을 취임 일성으로 내건 총리의 의지에 화답하고 문민정부의 개혁작업에 박차를 가하는 일이다. ○일관된 정책의지 절실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현정부가 추진해온 규제개혁 작업의 결과 비교적 손쉬운 행정절차적 규제완화에는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이제 다음 차례는 이익집단들의 기득권을 건드리는 작업들이다. 이러한 규제개혁은 그 성과가 큰 만큼 저항이나 비용도 만만치 않다. 이익집단의 반발을 효과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정부부터 일관되고 강력한 리더십을 가지고 규제개혁 작업을 추진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일반국민들의 규제개혁 작업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가 요구된다. 진정한 규제개혁, 그것은 결코 값싼 정책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아야 한다. ▷약력◁ ▲56년생 ▲연세대 경제학과, 미버지니아 테크대 경제학박사 ▲미애펄라치안주립대 조교수, KDI부연구위원 ▲전공:미시·수리경제학(게임이론) 산업조직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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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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