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동양사태로 본 자금시장 3대 부실] 투자자 속이는 기업·어설픈 관치·가격기능 잃은 시장

자본시장 허점 이용해 경영권 유지하기 급급<br>문제점 뻔히 알면서도 마땅한 제재수단 없어<br>스스로 구조조정 못하는 자본시장 부실 종합판

'동양 사태'의 후폭풍이 거세게 불고 있는 가운데 이번 사태가 한국 자본시장의 취약점을 그대로 드러낸 종합판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와 금융위원회ㆍ금융감독원 등 당국의 책임론을 주장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자본시장 자체가 탄탄하지 못한 게 원인이라는 게 금융ㆍ경제계 인사의 뼈아픈 자성이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시장의 힘으로 구조조정 못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그대로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① 투명성ㆍ신뢰 모두 잃은 기업과 그 오너


동양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대기업군을 거느리는 오너 일가는 자본시장의 허점을 이용해 투자자를 속이는 데 급급한 점이 나타났다.

동양그룹은 지난 2002년부터 적자 누적으로 시장성 차입금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동양은 대주주에 대한 규제 때문에 2002년 동양파이낸셜대부를 그룹의 지주사로 활용하기 위해 바로 대부업으로 등록했다.

동양은 또 상장사인 ㈜동양과 동양시멘트가 직접 계열사를 지원하면 배임 혐의를 받는 점을 피하기 위해 비상장사인 동양파이낸셜대부를 통해 동양레저와 동양시멘트를 지원했다. 4년 만인 2006년에는 시장성 차입금 규모가 1조원대로 늘었다.

동양이 은행에서 빌린 돈이 3,000억~4,000억원인데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이 2조원을 넘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 동양은 이 같은 우려에도 개인고객에 강한 증권사를 통해 종합자산관리계좌(CMA)의 돈을 자사의 부실계열사에 투자하도록 독려했다. 당국 통계에 따르면 동양그룹의 위기가 심화된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직전 투자의 전문성이 떨어지는 1회 투자자는 지방에 거주하는 60대 이상이 많았다.

금융 당국을 향해서도 계열증권사의 투자자 부적격 등급 회사채 등의 판매를 금지한 금융투자업법 규정에 2012년 구조조정 방안을 제출해 유예시키는 데 성공했다. 반면 2009년부터 금감원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도 중요한 내용은 지키지 않거나 거부했다. 당국 출신 업계 관계자는 "동양은 오너가 금융제국을 만들려는 목표가 확고했으며 그 과정에서 오너의 경영권을 보호하기 위해 쓴 투자금이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② '정치적 고려'에 매몰ㆍ'어설픈 관치' 되풀이한 당국


당국은 동양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으면서도 손을 대지 못했다. 정부가 기업 구조조정에 개입하던 관치금융은 여전했지만 예전만큼의 권한은 줄었다. 시장에 의한 적기 구조조정도 이뤄지지 못했다. 결국 애매해진 당국은 내부적으로 위험을 경호하면서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어설픈 관치'가 구조조정을 망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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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동양그룹의 위기를 인식한 금융 당국도 2008년 이후 규제 완화 바람을 거스르지 못했다. 2009년 자본시장법 개정안에는 당시에도 존재했던 동양그룹의 문제점은 묻은 채 계열증권사의 투자부적격 회사채 발행 길만 열어줬다.

이후 문제를 인식했지만 강제력이 없는 MOU 방식으로는 동양에 제동을 걸 수 없었다. 그나마 2013년 4월 이를 막기 위한 금융투자업법 시행령 개정안을 내놓았지만 10월24일로 시행을 늦춰 사후 약방문이라는 거센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③ 가격결정 기능 잃은 시장

이번 사태의 가장 근본 원인은 시장기능의 취약성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회사채와 CP 가격, 신용등급 등을 통해 기업의 상태를 알고 투자할 수 있는 기반이 불완전하다는 뜻이다.

동양의 CP는 주로 3개월 단기여서 공시의무가 없었다. 동양이 단기 CP를 계속 차환 발행하면서 사실상 장기처럼 쓸 수 있던 이유다. 기업의 위험을 제때 반영하지 않는 신용평가도 문제다. 초우량기업들은 아쉬울 게 없어서 정보 제공을 꺼리고 부실한 기업은 어려운 상황이 드러날까 봐 자료 제공을 회피하는 상황이다.

김 교수는 "투자자의 책임원칙을 강조하려면 먼저 투명한 정보가 공개돼야 한다"면서 "현재는 어떤 기업이 구조조정 중인지 채권단과 양해각서를 체결한 내용이 뭔지조차 알려지지 않은 채 당국과 일부 채권단 간의 밀실협상이 이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투자자 역시 고금리 회사채 등에 투자하면서 위험을 책임지지 않으려는 관행이 여전하다.

김 교수는 "투자자의 책임이 있는 만큼 특별법으로 피해자를 구제하려는 것은 절대로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라면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개별소송을 통해 잘잘못을 가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세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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