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냉엄한 국제자본… 협상은 이제부터다/권재중(특별기고)

긴급차관 도입과 이행조건을 둘러싼 국제통화기금(IMF)과 우리 정부와의 협상이 난항을 거듭한 끝에 타결되었다.지원자금의 규모가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커졌다는 점은 우리나라의 외화수급 사정이 알려진 것보다는 상당히 안 좋은 상태임을 시사한다. 외국투자가들이 우리 금융기관이나 기업에 제공했던 자금을 계속 회수하기만 했거나, 집계과정에서 우리의 상환의무가 늘어났거나, 아니면 외환보유액이 공식발표기준보다 한참 아래에 있거나, 혹은 이 모든 것이 동시에 해당될 수도 있다. ○외화난 예상보다 심각 지금 수혜국으로서의 의무에 해당하는 이행조건은 크게 거시경제운영과 산업구조조정으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다. 먼저 거시경제운영의 핵심은 3% 경제성장률을 목표로 하여 살림을 크게 줄이고, 대외적으로는 경상수지를 개선하여 대외지불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통화량의 증가율을 대폭 줄여 고금리를 감수하는 한편, 정부지출 삭감, 세금인상 및 세제감면 대상의 축소를 통해 재정수지 흑자를 늘려야 한다. 이행조건의 보다 가시적인 효과는 산업구조조정에 관련된 사항, 그중에서도 특히 금융기관 퇴출의 파급효과가 두드러진다. 이미 영업정지가 내려진 9개 종합금융사말고도 나머지 종합금융사나 은행도 경영개선, 증자, 합병 등의 구조조정노력의 여하에 따라 향후 IMF와의 정책 검토과정에서 정리대상으로 대두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부실금융기관의 정리와 더불어 은행의 소유지분한도와 외국인의 증권회사 소유제한이 실질적으로 폐지되기 때문에 외국 금융기관의 국내은행이나 증권회사의 인수가 현실화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가뜩이나 어려운 국내금융기관의 수익기반이 위축되어 더욱 심한 경영난을 맞을 것이 분명하다. ○공허한 수사만 남발 IMF와의 합의문이 국내재벌의 해체를 위한 구체적 조치를 제시했는지, 혹은 반도체, 자동차, 제철 등과 관련된 과잉투자의 해소책을 명시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금융산업의 구조조정은 해당 금융기관에 대해 채무관계에 있는 기업에 유동성문제를 초래하게 된다. 업무가 정지되거나 인가가 취소되는 금융기관은 기존 여신을 회수할 수밖에 없으며 다른 금융기관도 정리대상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자본충실도를 제고해야 되며 따라서 여신 회수의 가능성이 크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그동안 「무한경쟁」 「국제화」 「세계화」 「21세기 중심국가」 등 공허한 수사로만 치장했을 뿐, 진정한 경쟁환경 조성은 게을리 했으며 급속히 변해가고 있는 국제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해외자본유입 관건 올해만해도 기업의 연이은 부도사태와 금융기관 부실의 심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금융개혁과 단호한 산업구조조정만이 유일한 타개책이라는 지적이 있어왔으나 우리는 내부의 여러 갈등과 이해대립을 조정하지 못한 채 외국인투자가의 이반사태로 이어져 결국 국제사회의 도움과 그에 따른 강제적 구조조정과정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책임공방을 할 때가 아니다. 대외적으로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친 우리의 대외신인도를 하루 속히 회복하는 것이다. 국제사회의 도움은 한시적일 뿐이며 민간부문에서의 해외자본유입이 정상화됨으로써 국내자금사정도 호전되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려면 우리의 감량작전, 즉 IMF와 합의한 조건을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 지금부터는 IMF와 협상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금융시장과 보이지 않는 협상을 하게 된다. 우리가 지금의 국란을 온 국민의 정성과 지혜를 모아 극복한다면 우리는 오랫동안 미루어 왔던 우리 경제의 체질과 구조의 전환을 이룰 수 있으며 따라서 국제사회의 성숙된 동반자로서의 자리매김이 가능할 것이다.<대외경제정책연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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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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