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처절한 인생…'주먹'으로 희망을 쏜다

올 아카데미 4개부문 수상작 '밀리언 달러 베이비'<BR>절제된 연출미로 휴머니즘 진한 감동 살려내



감독, 조연으로 맹활약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조연으로 맹활약한 클린트 이스트우드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힐러리 스웽크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힐러리 스웽크

올해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을 받은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코드는 여타 아카데미 수상작들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97년 ‘타이타닉’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쥐고 “나는 왕”이라 외쳤지만, 일흔 다섯 백전노장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공로상을 받은 시드니 루멧에 비한다면 난 아직 애송이에 불과하다”며 “아직도 할 일이 많다”는 겸손함을 보였다. 이스트우드의 이 말은 곧 ‘밀리언…’의 모든 걸 말해준다. 스펙터클한 화면도 잘 생긴 배우도 없지만, 영화는 그 자체를 절제미로 살리며 진한 인간미를 보여준다. 촌구석 허름한 권투체육관의 코치 프랭키(클린트 이스트우드). 변변한 수완이 없어 키워놓은 선수들은 빅 매치를 위해 떠난다. 집 나간 딸은 편지조차 되지 않는다. 그나마 체육관을 운영하는 친구 스크랩(모건 프리먼)과 티격태격 말싸움을 하는 게 유일한 낙이다. 어느 날, 식당 여종업원 매기(힐러리 스웽크)가 체육관 문을 두드린다. “내가 좀 터프하다”며 당돌하게도 “한 번 키워달라”고 말한다. 프랭크의 매몰찬 한 마디. “서른 한달 여자가 발레리나를 꿈꿀 순 없지. 복싱선수도 마찬가지야. 난 여자는 안 키워.” 우여곡절 끝에 팀이 된 프랭크와 매기. 시합에만 나가면 연전연승이다. 데뷔 1년만에 매기는 챔피언 타이틀 매치를 갖는다. 그러나 가장 화려한 시합에서 매기는 큰 부상으로 나락에 떨어진다. 이 영화엔 두 가지 재미가 있다. 하나는 중반부까지 이어지는 복싱 장면. 영화 ‘알리’나 ‘록키’에서 보여지는 사실감은 없지만, ‘밀리언…’의 복싱 신은 경쾌함 그 자체다. 모든 게임을 돌 주먹 한 방에 1회전 KO승으로 마무리 짓고 씩 웃어버리는 매기의 표정엔 다듬어지지 않은 새내기의 풋풋함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진정한 재미와 감동은 매기의 챔피언 타이틀 매치 뒤에 있다. 더 이상 흥미진진한 KO 행진은 없다. 이보다 더 비참할 수 없는 절망과 죽음만도 못한 처절한 인생만이 남아있다. 그러나 영화는 차가울 정도로 일정정도 거리를 두며 감정의 과잉에 빠지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매기와 프랭크 모두 가족으로부터 철저히 버림받은 이들. 진한 감동은 이들이 서로의 상처를 말없이 보듬어 주는 데에서 시작하고 끝맺는다. 10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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