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불어난 재정적자를 감당하기 어려워진 각국 정부들이 공기업 민영화와 국유지 등 국가재산 매각에 적극 나서고 있다. 세수부족분을 메우면서 잠재성장률도 끌어올리는 효과를 보기 위해서다. 하지만 섣부른 민영화가 공공요금 인상 등의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1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원자재 붐이 시들해지면서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는 호주 등에서 공기업 민영화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조 호키 호주 재무장관은 이날 WSJ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민간 투자자들에게 매각할 만한 자산과 사업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최종 협상 국면에 있다"며 "수도·전기 같은 공익사업(utilities)과 운송망(transport network) 매각이 유력하다"고 말했다. 호키 장관은 호주 정부가 매각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자산은 총 1,174억9,000만달러 이상에 달한다고 소개했다. 그는 "첫 매각대상은 국영 보험사인 메디뱅크(40억달러 규모)이며 전체 자산 매각 최종안은 오는 5월23일 발표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호주의 이웃 나라인 뉴질랜드도 최근 국영항공사인 에어뉴질랜드의 지분 20%(약 3억2,000만달러 규모)의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앞서 영국은 지난해 10월 500년 역사의 체신공사 로열메일의 지분 52.5%(최대 28억달러)를 기업공개(IPO)를 통해 매각했다.
미 오클라호마대에 따르면 지난 2012년 전세계에서 민영화된 정부 자산규모는 약 1,900억달러로 역대 세 번째로 컸다. 지난해에는 각국 정부의 민영화 자산규모가 이보다 많은 2,000억달러에 육박할 것이라는 진단이다. 관련 연구를 주도한 마이클 프라이스 오클라호마대 교수는 "1980년대 영국 마거릿 대처가 주도한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전세계에서 민영화 바람이 분 후 오늘날 또다시 민영화가 대세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세계 각국이 민영화에 나서는 가장 큰 이유는 부족한 세수를 조달하기 위해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전세계 실업률은 계속해서 고공행진을 하며 소득세수는 늘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고 경기둔화로 법인세·소비세 등 각종 세수도 줄고 있다. 또 경기부양을 위한 막대한 재정지출로 대다수 국가들이 재정에 구멍이 난 것도 이런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 이외에 민영화는 막대한 공공부채 규모를 줄여 거시경제 건전성을 높일 수 있으며 정부는 매각대금으로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늘려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높일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각국 정부의 이 같은 움직임이 더욱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국유화된 기업들 중 아직 민간에 매각되지 않은 곳이 많고 공산주의 잔재가 남아 있는 동유럽에서는 대다수 대기업들이 아직 정부 소유이기 때문에 경쟁력 제고를 위해 민영화를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코노미스트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이 약 40조달러에 달해 민영화가 재정적자 문제를 해결하고 매각대금의 재투자를 통한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경제성장을 위한 새로운 노다지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코노미스트지는 이 같은 민영화는 각종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어 신중히 이뤄져야 한다고 경고했다. 예컨대 국가가 독점하고 있는 수도사업을 섣불리 민영화할 경우 요금이 폭등해 국민들이 엄청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지는 "공익사업의 경영권을 민간에 매각하는 동시에 독점을 막는 규제를 강화하거나 민영화의 전제조건으로 공익사업 확대를 내거는 등 '창의적인 민영화'를 추진하면 이에 따른 피해는 최소화하고 경제적 이득은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