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금융권에 자금이 넘쳐 금리가 한자릿수로 내려앉는 바람에 설땅을 잃을 것으로 보였던 사채시장이 최근 다시 힘을 모으며 재기에 나서고 있다.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 기업과 개인의 잇단 파산으로 위축됐던 사채시장은 최근 「큰손」으로 불리는 전주(錢主)들이 다시 서울 명동과 강남으로 속속 모여들면서 예전의 활기를 되찾아가고 있다.
어음을 할인해가는 기업도 크게 늘어나고 있으며 금리도 시장금리의 하향세를 반영해 예전보다 크게 내렸다. IMF 직후에는 5대 그룹 계열의 주력기업인 100여개 업체만이 회사채 등을 할인해갔지만 시중자금이 남아도는 요즘에는 중견·중소기업들도 쉽게 할인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은행 등 제도금융권에 자금이 넘치는 바람에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금리가 한자릿수로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사채시장이 활기를 띠는 것은 제도금융권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11일 오후 서울 사채거래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명동, 사채업자들이 대거 몰려 있는 U빌딩 S파이낸스. 구로공단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한다는 金사장(45)은 『돈이 남아돈다지만 중소기업에는 그림의 떡』이라며 『중소기업 어음이 사채시장에서 할인돼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최근 사채시장에는 할인대상 어음이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할인금리도 낮아졌다. IMF 직후에는 대기업이 발행한 A급어음의 경우 월1.2%(연14~15%)로 거래됐지만 요즘에는 B, C급 어음도 활발히 거래되고 있다.
A급 어음의 경우 금리도 월1%(연12%) 정도로 내렸으며 B, C급은 각각 월1.5%(연18%), 월2%(연24%) 정도에서 거래되고 있다. 연9% 수준인 제도금융권의 할인금리보다 조금 높긴 하지만 신용도나 담보가 약한 중소업체로서는 그야말로 가뭄 끝의 단비다.
명동 C빌딩에서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 S투자의 林씨(43)는 『IMF 전의 시장규모를 기준으로 할 때 IMF 직후에는 20~30% 수준으로 위축됐으나 최근 70~80% 수준까지 회복됐다』고 귀띔했다. 林씨가 관리하는 전주도 IMF 이전 7~8명에서 5~6명으로 줄었지만 최근들어 다시 『돈을 굴릴 수 있느냐』는 문의가 오고 있다고 한다.
林씨는 최근 전주들의 발길이 늘어난 이유에 대해 『은행에 넣어두면 세금을 제외하고 연3~4%의 수익을 얻는 게 고작이지만 사채시장에서 유능한 사람을 잡으면 연15%의 고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채업자들은 보통 3~10명 가량의 전주들을 확보하고 있다. 전주들은 80% 이상이 대졸자이며 이중 절반 이상이 S, Y대 등의 고학력자나 저명인사들이다. 이에 따라 금리변동에 민감한 이들이 사채시장을 노크하고 있는 것으로 사채업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오현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