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은행 대출 시스템 여전히 외압에 취약

여신 합의체기구 구성원 인사권 은행장 독점…운영방식도 제각각<br>대출 최고의사 결정체계 분석<br>당국, 가이드라인 마련 필요


은행들의 최종 대출승인 시스템이 중구난방이어서 민원성 대출 압력 등에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신(대출)의 최종권한을 여전히 임원 전결에 맡기는 곳이 있는가 하면 여신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임원합의체기구 방식을 도입한 은행들도 운용방식이 제각각이다. 합의체 기구가 있더라도 구성원들의 인사권은 은행장이 쥐고 있어 외압을 완전히 차단하기에는 역부족인 것으로 지적됐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이 은행의 대출 의사결정기구 운영 및 인사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14일 서울경제신문이 국민ㆍ우리ㆍ신한ㆍ하나ㆍ기업ㆍ외환ㆍ한국씨티은행과 농협 등 8개 주요 은행들의 대출 최고의사결정 체계를 비교 분석한 결과 이 같은 문제점들이 드러났다. 이 중 임원합의체 의사결정기구를 두지 않은 곳은 한국씨티은행으로 대출 승인의 최종 의사결정권을 리스크관리 부서의 임직원에게 일임하고 있다. 이 은행의 한 관계자는 "은행장과 리스크관리부서 임직원에게 전결권이 일임된 것은 맞다. 다만 여신담당 심사역과 유관 부서 실무자들이 의사개진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은행들은 대부분 '여신위원회' '여신심의위원회' '여신협의회' 등의 명칭으로 합의체 의사결정기구를 두고 있다. 이들 기구는 여신정책 결정권과 일정 규모 초과 대출에 대한 심사ㆍ승인권을 갖게 되는데 농협의 경우 은행장 격인 신용 부문 대표가 여신위원장을 맡고 있다. 다른 은행들의 경우 은행장을 제외한 유관 부서 임원들이 주요 구성원이다. 한 시중은행의 임원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은행장이나 개별 임원이 대출의 최종 의사결정권을 독점할 경우 은행이 부실대출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며 합의체기구 설립의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한 금융그룹의 핵심관계자는 "대출승인권을 합의체기구에 맡긴다고 하더라도 그 기구에 구성원으로 참석하는 임원의 인사권한은 어차피 은행장이 독점하고 있어 마음만 먹으면 직ㆍ간접적으로 대출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며 "해당 임원들도 은행장 눈치를 안 볼 수 없다"고 전했다. 따라서 합의체기구에 참여하는 임원들이 소신껏 투명하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인사상 보호장치를 갖춰줄 필요가 있다는 게 금융권의 지적이다. 보호장치로는 합의체기구 참여 임원의 최소 임기를 보장하고 부득이하게 문책성 인사를 할 경우 이사회 산하 감사위원회에 보고하고 추인을 받도록 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합의체기구의 운영방식 역시 제각각이다. 은행들은 대부분 여신심사 부문과 기업영업 부문의 임원들을 합의체기구에 넣고 있지만 그 밖의 구성원들은 천차만별이다. 특히 준법 부문 관계자가 의결권을 가진 상시 멤버로 합의체기구에 포함된 곳은 국민은행 1곳에 불과했다. 또한 금융파생상품과 같은 복잡하고 전문적인 상품을 다루기 위해 투자은행(IB) 부문 관계자를 합의체기구의 상시적 의결권 멤버로 포함시킨 곳은 우리ㆍ신한ㆍ기업은행에 불과했다. IB 부문의 한 은행 간부는 "미국발 금융위기는 부채담보부증권(CDO)과 같은 파생상품에 엮인 대출부실을 관리하지 못한 데 원인이 있었다"며 "파생금융상품 전문가를 (은행 대출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에 참석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의결요건 역시 강화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은행들이 합의체기구에서 서면ㆍ대리출석 의결의 요건을 보다 엄격히 정비해 합의체기구가 요식적으로 운영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아울러 부당대출을 견제할 심사ㆍ리스크 부문 담당자의 의결권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민은행의 경우 여신위원회가 의결 정족수(재적 3분의2 이상 참석, 참석 3분의2 이상 찬성)를 채우더라도 여신심사 분야의 위원이 반드시 3명 이상 참석해야 의결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귀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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