럼스펠드 "한국일 결정할 문제" 반복
17일 열린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 결과는 우리 군의 이라크 추가 파병 문제와 관련, 양국의 절충이 이뤄지기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상당히 남아 있음을 시사한다.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추가 파병 결정에 거듭 사의를 표했다. 그러나 그는 우리측의 `재건지원 중심의 3,000명 파병안`을 수용하는지에 대해선 끝까지 구체적인 답변을 회피했다.
물론 럼스펠드 장관이 파병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 `주권국가인 한국이 결정할 문제`라고 되풀이 강조한 대목을 최대한 광의로 해석하면 우리측 파병안에 동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고위관계자는 "미측이 수일 전에도 외교경로를 통해 노 대통령의`3천명 파병안`결정에 대해 사의를 표명했다"면서 한미 간에 막후 절충이 있었음을 내비쳤다. NSC, 국방부 등의 다른 관계자들도 "럼스펠드 장관의 사의 표명은 우리의 3,000명 파병안을 수용한 것"이라고 애써 강조하고 있다.
이 같은 주장을 무시하기도 어렵지만 석연치 않은 대목도 많다. 라종일(羅鍾一)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오전 SCM이 채 끝나기도 전에 "미국은 이미 정해진 우리 입장을 수용하는 것 같다"며 "SCM이 끝나면 합의한 것은 합의한 대로 발표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일부 정부 당국자들은 "럼스펠드 장관의 입을 통해 3,000명 규모에 대한 미측의 동의가 드러날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날 오후 양국 국방장관의 기자회견은 이런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이는 일부 언론 보도에 영향을 받은 정부 당국자들이 성급한 기대감을 표출했거나, 아니면 미국측이 SCM 협의 테이블에서 당초 외교적 수사와는 달리 까다롭게 나왔다는 해석을 낳을 수 있다.
심지어 일각에선 정부에 대한 `손목 비틀기`가 있었고, 이라크 파병과 관련된 병력수는 아예 언급되지 못했다는 얘기도 흘러 나온다. 따라서 미측이 마지못해 우리측 안을 수용하더라도 갈등의 파장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수도 있다.
정부 당국자들의 주장대로 한미 간에 이미 대략적인 합의가 이뤄졌으나 우리의 주권에 속하는 사항이기 때문에 미측이 구체적 내용에 말을 아끼고 있는 것이라면 파병 논의는 국회 조사단의 귀국과 함께 급속히 진전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의 한 핵심 관계자는 "한미간 막후 합의 내용대로라면 12월 중 파병동의안이 국회에 상정되고 파병은 내년 총선 전에 이뤄질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고태성 기자 tsg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