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구조조정위원회가 내놓은 「지배구조 개편방안」은 한마디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기업에 대한 채권단의 실질적인 경영지배가 시작됐음을 의미한다. 오너의 경영권은 박탈하지 않더라도, 「채권단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외이사 비중을 강화하는 등의 방법으로 「간접 통제장치」를 다각적으로 마련하자는 심산이다.◇형식적인 의결기구로의 사외이사= 현재 대부분 국내 기업의 사외이사는 「경영진의 허수아비」 역할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일반 주주들의 이해를 보호하고 경영진을 견제하는 장치로서 이사회의 기능은 철저히 무시돼왔다. 이사회가 대주주나 최고경영자가 지명하는 사내이사들로 채워지고, 이들이 주주총회에서 검증과정 없이 통과의례를 거쳐 구성됐기 때문.
정기 이사회 개최와 회의록 작성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회의진행도 대주주가 임명한 사내 이사를 중심으로 목적없이 운영돼 온 게 부인하기 어려운 현실. 「경영진에 대한 모니터링 장치」 대신, 최고경영자의 독단적 의사결정을 오히려 부추겨온 것이다. 「회사내의 형식적 의결기구」로 전락한 셈이다.
◇「세가지 무기」를 동원한다=구조조정위의 이번 방안은 워크아웃 대상기업의 채권단에게 「경제적 주주(ECONOMIC SHAREHOLDER)」로의 위치를 다지도록 한다는게 핵심 포인트다. 무기는 크게 세가지. 그림참조
우선 중심되는게 채권단의 이해를 대변하는 사외이사의 확충이다. 경영진에 의해 일방적으로 선임되는 사외이사는 의미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은행의 「승인」에 의해 임명된 외부 전문가를 사외이사를 이사회 구성원의 절반 이상으로 채운다는게 골격이다.
모 은행은 사외이사를 워크아웃기업 이사회 구성원의 60% 이상까지 끌어올린다는 내부방침을 이미 세웠다. 기존 경영진은 단순 집행기능만 갖게하고, 모든 의사결정은 사외이사 중심의 이사회에서 책임지도록 한다는 것. 은행권에서 유행하고 있는 「비상임이사회 중심의 지배구조 개편」과 일맥상통한다. 이사회 개최도 최소 분기별로 정례화, 상시 견제장치를 구축시킨다는 계획이다.
구조조정위의 두번째 「무기」는 경영평가위원회. 기업개선약정에 따르면 워크아웃 대상업체의 경영진은 매년 채권단에 경영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그러나 경영실적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일은 전문적인 분석능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경평위를 구성하도록 한것도 이런 현실때문. 채권단이 내·외부전문가를 안배해 위원회를 구성하고, 위원회는 대표이사를 중심으로한 경영진팀에 대해 총체적인 평가와 부분별 해당경영진의 업적을 평가하는게 이 제도의 목표다. 평가위원회는 정기 평가결과를 채권단에 제출하고, 채권단은 평가결과를 감안해 「경영진 교체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세번째 무기는 「경영진 추천위원회」. 평가위원회에서 경영진 교체 판정이 내려졌을때 추천위는 발동한다. 추천위는 채권자나 주주가 직접 참여하는 방안보다, 업계에 지식이 해박한 외부인물로 구성토록 했다. 위원회는 새로운 경영진에 임명할 후보자를 물색하고, 채권단은 이 후보자에 대해 주주총회를 통해 신임 경영진을 선임하게 된다. 아직 현실화되지는 않았지만, 기업의 감사를 은행에서 내보내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은행의 실질적인 경영권 지배가 시작된다=구조조정위 관계자는 『이같은 지배구조 개편장치가 본격 가동되면 워크아웃 기업에 대한 은행의 경영권 지배가 시작될 것』으로 내다봤다. 사외이사 중심의 이사회가 신화신규투자 신화채무조달 신화경영전략 등의 전략적 의사결정을 견제, 채권단이 경영권을 장악토록 한다는 것. 기존 경영진은 사실상 「허수아비」로 변하는 셈이다.
그간 기업에 대해 의결권을 거의 행사하지 않았던 기관투자가들의 입김도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사외이사 비중 확대와 함께 이들이 기업경영에 직접 간여하기 시작할께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번 방안은 무엇보다 「선진 지배구조」가 한국에도 뿌리내릴 수 있는 직접적인 계기를 마련해줄 것으로 보인다. 쉽게말해 소유와 경영의 분리다. 가장 큰 무기는 사외이사의 비중확대. 현재 미국기업 이사회의 평균규모는 13명, 사외이사의 비중이 75% 가량이다. 7~8명이 적정규모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사회 개최도 연간 6회 이상 정례화, 기업의 명실상부한 「의결기구」 노릇을 하고 있다. 독일은 이보다 더하다. 독일은 「한국식 워크아웃 기업」에 대해 은행이 해당기업을 직접 경영, 지배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신화사외이사의 구성비율 강화를 통한 경영권 통제와 신화감사위원회 도입 등을 뼈대로 한 「기업지배구조 가이드라인」을 5월 각료이사회 이후 각국에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새로운 통상압력 수단으로 동원될 가능성도 점치고 있는 실정.
구조조정위의 이번 방안은 이같은 선진국들의 유형과 국제기구의 요구를 워크아웃기업에 복합적으로 적용시켜, 「한국적 소유경영의 분리」라는 틀을 잡아나가겠다는 의도를 깔고 있다. 【김영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