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경이 만난 사람] 허경 기술표준원장

"골프장 부킹순서·미용실 서비스 비용도 표준화 필요하죠"



우리 주변에 돈만 요구하는 경우 많아
서비스 가치 확인위해 표준화 나서야
57개 생활표준화 과제 중 28개 완료
올해는 공동주택 소음 완충재등 추진 기업이 손쉽게 인증받는 시스템 구축
생활영역 넓어져 민간 역할 강화해야
'골프장의 부킹(예약) 순서, 강남 미용실이나 장례식장의 서비스 비용….' 우리가 일상에서 '뭔가 꺼림칙하지만 그런가 보다' 하고 흘려버리기 십상인 것들이다. 하지만 허경(사진) 지식경제부 기술표준원장은 요즘 국민들의 생활과 매우 밀착돼 있는 서비스를 어떻게 표준화할지에 대해 고민이 많다. 국민들이 제값에 맞는 서비스를 보다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국내에 표준이 법제화된 지 올해로 50년. 그동안 산업과 품목에만 맞춰져 다소 딱딱하게 여겨졌던 '표준'이 우리 실생활에 더욱 가깝게 다가오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수요자는 제쳐놓고 돈만 요구하는 서비스들이 아주 많습니다. 생활형 서비스의 경우 선택과정을 거쳐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 '표준화'가 필요합니다." 허 원장은 이미 우리 생활과 아주 밀접한 57개의 생활표준화 과제를 선정해 지난해까지 28개를 완료하고 나머지는 오는 2014년까지 표준화하는 로드맵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6개월간 전국민을 대상으로 생활 속에서 표준화가 필요한 품목이나 서비스에 대한 제안을 받는 과제도 함께 추진했다. 지난해까지 전국호환용 교통카드와 휴대폰 배터리를 비롯해 결혼식장ㆍ산후조리원 등의 표준화를 완료했다. 지난해 말에는 자동차 정비 서비스 표준화도 도입해 현재 대형사 위주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휴대폰 문자입력 방식도 표준화를 추진, '천지인'을 상반기 중 표준방식으로 최종 채택할 예정이다. 하반기에는 국제표준으로도 등록한다. "올해는 공동주택의 소음 완충재를 비롯해 엘리베이터 버튼 등 16종을 표준화할 계획입니다. 국민뿐 아니라 표준인증을 받은 기업들 역시 공공기관 등에 납품할 때 우선적으로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허 원장이 국민의 생활 편의성 제고와 함께 역점을 두는 것 가운데 하나는 기업들이 보다 손쉽게 인증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허 원장은 "정부 부처별로 인증 간 중복시험 항목의 상호인정이 개선되지 않아 기업들로서는 시간과 비용을 낭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그는 우선 기표원 내 6개 법정의무인증(KC)과 KS인증(임의인증) 간 중복시험을 서로 인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타 부처 인증제도의 상호 인정도 추진하고 있다. 우선 올해 기표원 내에서 추진하고 내년에는 지식경제부, 2013년에는 전부처로 확산시킬 계획이다. 모바일 지급결제 표준정책에 대해서도 허 원장은 정부 부처 간의 '공감'을 무엇보다 강조했다. 그는 "표준이라는 것은 누군가가 강하게 반대하면 이뤄지기 힘들다"며 "모바일 지급결제의 경우 방송통신위원회와 금융위원회 등 여러 부처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어 어느 한쪽보다는 총리실에서 종합해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소신을 밝혔다. 특히 허 원장은 앞으로는 과거와 달리 표준에서의 민간 역할을 강화해야 할 때라는 점을 강조했다. 관(官)보다는 민간이 중심이 돼 표준을 만들어가고 정부는 이의 인증에 보다 힘을 써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표준에 관한 한 현재 우리나라는 거꾸로 된 상태"라며 "표준의 종류만 해도 2만4,000여종에 달하는 등 민간의 여력이 여의치 않아 정부가 도맡아 해왔지만 앞으로는 변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기표원은 현재 매년 연구소나 협회ㆍ학회 등에 각 40~50개의 표준화 부분을 맡기면서 민간이양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표준의 초점이 산업에만 맞춰져 있다 보니 정부 주도의 정책이 펼쳐져왔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생활과 서비스의 표준영역이 넓어질수록 민간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기표원이 표준과 인증 못지 않게 중요하게 생각하고 벌이는 사업 가운데 하나는 국민들의 안전과 밀접한 '리콜' 분야다. 특히 지난 2월 '제품안전기본법' 이 새로 제정, 시행되면서 기표원의 역할이 커졌다는 게 주변의 시각이다. 그는 "제품결함으로 소비자에게 위해가 발생하거나 우려가 있을 경우 리콜을 권고 또는 명령할 수 있게 됐다"며 "법 시행 이후 물휴지, 자전거, 유아용 치아발육기 등 5개 품목 16만개 제품에 대한 자발적 리콜이 시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기업과 소비자들 역시 리콜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갖기보다 소비자의 안전확보라는 점에서 보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2월 기표원장에 취임한 후 가장 먼저 단행한 일은 시험인증기관 통합이다.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국내 시험인증산업의 대형화를 위해 6개 기관을 3개로 통합한 것. "전세계적으로 시험인증시장 규모는 100조원에 달하지만 국내 시험인증기관의 규모가 영세해 글로벌 경쟁력은 물론 신사업에 투자할 여력이 없습니다. 국내시장 역시 4조원대로 추산되는데 이마저도 60%를 해외 경쟁기관이 잠식한 상태라 일종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했습니다." 실제로 통합 이전 국내 공공시험인증기관의 매출은 직원 1인당 1억원에 불과했다. 이는 규모에서 글로벌 시험기관의 1%에 불과한 수준이다. 허 원장은 "통합 이후 새로운 시험인증기관장들이 매출목표를 공격적으로 잡으면서 대형화와 전문화를 꾀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4년 후에는 더 큰 형태의 시험인증기관 대형화 작업에 대한 고민이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시험인증기관 대형화 작업이 이제 시작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아울러 우리나라의 국제표준화에 대한 위상 강화도 허 원장이 추진하는 빼놓을 수 없는 과제로 꼽았다. 지난해 대표적 국제표준화단체인 국제표준화기구(ISO)와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제표준화 기여도는 10위였다. 하지만 국제표준에서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상임이사국 진출을 위한 최소 기반은 7위다. 아직 갈 길이 먼 상황이다. 허 원장은 "ISO와 IEC의 이사회 결정사항은 주요 정책방향 설정에 매우 중요하다"며 "우리나라가 상임이사국이 되면 국제표준화기구에 대한 영향력 강화에 결정적일 수밖에 없어 국제기여도 향상에 적극 나서고 있다"고 서령했다. 지난해 IEC의 국제표준 제안건수에서는 우리나라가 1위(24건)에 올랐다. 하지만 누적기준 수로는 여전히 미흡해 표준활동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게 허 원장의 지적이다. 국제표준의 트렌드는 아무래도 신성장 산업과 밀접히 연관돼 있다. 스마트그리드와 전기차 등이 그것이다. 이 같은 분야에서 국제표준을 위해 각 국가들이 보이지 않는 전쟁을 벌이고 있고 합종연횡도 활발해지고 있다. 기표원이 이 같은 흐름에서 한 발 더 앞서나가기 위해 3월 말에 도입한 제도가 국가표준 코디네이터. 국가 연구개발 결과의 산업화와 우리 기술의 국제시장 진출을 지원하기 위해 국가표준을 종합적으로 관리∙조율한다. 기표원은 현재 스마트그리드∙전기차∙원자력∙3D산업∙클라우드컴퓨팅∙스마트미디어 등 6개 분야에 민간인 출신 표준 코디네이터를 영입해 운영하고 있다. 허 원장은 "표준 코디네이터들은 국가 연구개발(R&D) 과제의 기획단계부터 참여해 표준화와의 연계를 추진한다"며 "국가 간 표준화 협력 추진전략을 마련하고 우리 기술의 국제표준화를 적극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올해는 국내 표준업계에도 특별한 해다. 1960년 처음 제정된 산업표준화법이 50주년을 맞는 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표원은 지난 50년간 큰 변화가 없는 KS시스템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과거 선진국 표준을 '번역' 도입한 수준에서 벗어나 우리나라가 주도하는 표준화 시대를 개척하기 위한 시스템 개편과 새로운 철학의 접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10월 '세계 표준의 날'을 기념해 대대적인 유공자 포상과 '산업표준화 50주년 국제 세미나'도 계획하고 있다. 허 원장은 "국가 표준 운영체계를 민간이 참여하고 정부 부처 포용형으로 전환하는 내용 등을 담은 국가표준 선진화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며 "현재 표준학회를 통해 용역과제로 추진 중이어서 도출된 정책안은 9월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 상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 정책-기업 요구 조화, 국내 표준화작업 진두지휘
■허경 원장은 우리나라의 표준정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허경 기술표준원장은 표준과 관련해 기업과 정부 정책의 조화를 누구보다 잘 이끌어가는 인물로 꼽힌다. 그는 지난 1978년 기술고시(14회)에 합격했지만 바로 공직으로 나서지 않고 KAIST에서 2년간 공부한 뒤 민간기업인 대우중공업에서 3년간 근무했다. 기술고시에 패스한 뒤에도 5년가량 늦게 공직에 발을 내디딘 셈이다. 기업과의 인연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06년 산업자원부에 재직할 때는 공직과 기업인 인사교류 정책에 따라 10개월간 SK경영경제연구소에서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기업들의 새로운 먹을거리 창출의 중요성의 무엇보다 강조했다. 허 원장이 우리나라 표준정책에서 무엇보다 민간의 역할강화를 주문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게 주변의 평이다. 허 원장은 현재 국제표준화기구(ISO)의 160개 회원국 가운데 비상임 이사회(2년)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상임이사국 6개국을 제외한 14개국의 비상임이사회 멤버라는 것은 표준을 기반으로 국제산업 협력에 상당한 장점이다. 허 원장은 "우리나라의 기술이나 표준을 글로벌화하는 데 국제적 네트워크가 무엇보다 중요해 비상임이사국이라는 지위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인적 네트워클 이용해 그는 오는 10월 산업표준화법 50주년을 기념하는 국제 포럼에 ISO 사무총장을 초빙했다. 특히 그는 신성장 산업을 뒷받침하기 위해 표준 코디네이터 제도를 도입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미래산업에도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그는 2009년 지식경제부에서 신산업정책관을 지내기도 했다. 허 원장은 "향후 신성장 산업은 의료나 바이오 등 고령화에 대비하는 것들이 중요하다"며 "표준작업 역시 이 같은 시대의 큰 흐름과 발맞춰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약력 ▦1957년 부산 ▦부산대 기계설계학과 ▦KAIST 항공공학석사 ▦대우중공업 입사 ▦2003년 산업자원부 산업입지환경과장 ▦2006년 산자부 신산업기술표준부장 ▦2006년 SK경영경제연구소 전문위원 ▦2008년 지식경제부 기술표준정책국장 ▦2009년 지경부 신산업정책관 ▦2010년 지경부 기술표준원장
인체치·색채 등 표준화된 '콘텐츠 장터' 구축
■향후 정책방향은
"산재된 기술정보 데이터 통합 정보은행 플랫폼 내년 선뵐것"
우리나라 20대 초반(20~24세) 여성의 평균 발 길이와 너비는 얼마나 될까. 정답은 23.3㎝와 9.1㎝. 별거 아닌 것 같지만 통계화된 표준은 젊은 여성을 타깃으로 한 구두는 물론이고 양말이나 스타킹 업체에 무엇보다 중요한 비즈니스 정보다. 기술표준원은 전국민의 키부터 몸무게, 신체부위별 사이즈 등 갖가지 표준화된 신체정보를 갖고 있다. 한국인신체사이즈 조사 사업인 '사이즈코리아(Size Korea)'에서 얻는 귀중한 데이터다. 최근에는 3D 인체측정을 통해 훨씬 다양하고 정확한 신체정보도 확보했다. 인체 치수뿐만 아니라 각종 색채정보를 비롯해 리콜이나 시험인증 데이터도 풍부하다. 기표원은 이 같은 표준이나 인증∙리콜 등과 관련된 데이터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한 '정보은행' 사업을 실시할 계획이다. 즉 표준화 된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비즈니스 '장터'가 탄생하는 셈이다. 리콜 정보 역시 소비자가 주목하는 포인트와 거꾸로 기업들이 유념해야 할 점의 공통점을 도출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정보은행의 주요 콘텐츠로 활용될 예정이다. 마치 아이폰을 통해 다양한 애플리케이션 매매가 이뤄지는 것과 비슷한 개념이다. 허 원장은 "산재된 기술정보 및 데이터를 통합하고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정보를 수정하거나 확장해 창의적인 지식창출을 위한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정보은행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기상청이 날씨정보를 기반으로, 통계청이 각종 경제ㆍ사회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다양한 부가가치를 생산해내듯 표준이나 색채ㆍ인증과 같은 데이터를 활용해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기표원은 인체치수∙색채∙참조표준∙무역기술장벽(TBT)∙리콜∙시험인증 등 6개 데이터를 활용한 지식기반의 개방∙참여형 '정보은행' 플랫폼을 내년 중 선보일 계획이다. 이를 위해 이미 3개월 전부터 6개 그룹으로 나눠 30명의 인력을 동원해 기본 플랫폼 구축작업에 돌입했다. 허 원장은 "정부는 정보은행의 플랫폼을 구축해 약간의 지분만 갖고 나머지는 모두 민간에 맡길 것"이라며 "공공 데이터가 플랫폼을 통해 노출되면 적용 분야는 거의 무궁무진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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