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 '白旗를 기다리며'

지난 93년 12월16일자 한 일간지 사회면에 이런 제목의 기사가 큼지막하게 실렸다. ‘어제 파업 없는 날 기록.’ 전날인 12월15일 오전에 유일한 파업장이었던 모 화장품 업체의 분규가 타결, 전국 5인 이상 사업장 가운데 단 한곳도 파업 중인 곳이 없었다는 내용이었다. 그 후 13년이나 흘렀다. 하지만 ‘파업 없는 날’은 다시 오지 않고 있다. 오히려 노조 지도부, 그들만의 형식적인 파업이 하루가 멀다 하고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다. 노동운동의 양대 기둥 중 하나인 민주노총은 올들어 한달반에 한번꼴로 총파업 투쟁에 나서는 등 총파업 만능주의에 빠져 있다. 오죽했으면 수호 전 민노총 위원장조차 “(현재) 노동운동은 책임 있는 교섭은 실종된 채 형식적 총파업만 ‘우리들만의 잔치’로 남발되고 있다”고 비판했을까. 1일 민노총 총파업에는 39개 노조 사업장에서 2만8,000여명(노동부 추산)이 참여했다. 이는 민노총 소속 노조(1,205개)의 3.2%, 노조원(64만2,000명)의 4.4%에 불과하다. 총파업 지침이 소속 노조원들에게조차 먹혀들지 않고 있는 셈이다. 노조 지도부, ‘그들만의 총파업’이라는 비판을 들을 만하다. 민노총은 한국노총이 부족하나마 여론의 지지를 받는 이유를 곰곰이 되새겨봐야 한다. 정부도 이참에 민노총이 파업에만 기댈 수밖에 없는 원인을 고민하고 대화의 문을 더 열어야 한다. ‘문은 열려 있으니 들어오고 싶으면 오고 말 테면 말아라’는 식의 접근법으로는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진정한 노사정 대화 복원을 위해서는 민노총도 함께 보듬어야 한다. 민노총을 제쳐둔 한노총과의 ‘짝짜꿍’은 국민들에게 자칫 꼼수로 보일 수 있다. 경찰서 유치장에 한명의 유치인도 없어 경찰관서에 백기가 내걸렸다는 뉴스가 종종 들린다. 이날 하루 범죄 혐의자가 한명도 없는 ‘선한 세상’이 됐다는 좋은 소식을 외부에 전하자는 뜻이다. 경찰서처럼 노동 문제를 다루는 기관이나 단체에 백기가 내걸리는, 파업 없는 날이 오기를 바라본다. 임석훈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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