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부자가 싫어"…또 '묻지마' 증오범죄

빈부격차 따른 박탈·소외감이 원인…자신 범죄 합리화도 또 다른 이유

부유층에 대한 막연한 적개심과 소외된 자신의 처지를 비관, 아무런 원한관계가 없는 생면부지의 불특정인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른용의자가 붙잡혀 이른바 `묻지마식' 증오범죄의 심각성을 또 드러냈다. 24일 경찰에 검거된 `봉천동 세자매 살해사건' 용의자 정모(37)씨는 초기 수사과정에서 자신의 범행 동기로 "직장도 못 구하고 결혼도 못해 화가 나 부자만 보면죽이고 싶어진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정씨가 이 사건 외에도 수 건의 살인ㆍ강도 사건을 연쇄적으로 저지른것으로 보고 그의 여죄를 캐고 있다. 정씨의 범행동기 및 사례 등은 2004년 7월 온 나라를 충격과 경악속에 빠뜨렸던`희대의 살인마' 유영철 연쇄살인 사건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당시 유씨도 "좋아하던 여자가 내가 싫다고 떠났고 부자들이 싫었기 때문"이라는 범행동기를 밝혀 사회에 대한 적개심 등을 배경으로 하는 `묻지마' 범죄에 대한심각성을 사회적 이슈로 떠올렸다. 2004년 11월에도 부유층의 상징인 서울 압구정동의 한 초등학교에 "나는 취직도못 하고 있는데 강남의 부동산 가격은 폭등하고 있다. 강남 8학군 다니는 학생들을 죽이겠다"는 편지가 배달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묻지마식 증오범죄의 원인을 점점 심해지는 빈부 양극화에 따른 소외감과 박탈감, 인간 존엄성이 상실된 현대 사회의 비도덕성으로 진단한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곽대경 교수는 "사회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양극화가 나타나는데 많이 갖지 못하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모든 책임을 사회와 제3자에게 떠넘기려는 심리가 있다"고 분석했다. 곽 교수는 "이들의 공격적인 성향은 주변에서 감지할 수 있기 때문에 가족이나 이웃, 친구가 항상 관심을 갖고 따뜻하게 감싸 안아야 하고 부자에 대한 막연한 사회적 반감이 줄어들도록 `열심히 일한 사람이 돈을 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사회적 풍토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최근 잇따라 터지는 재벌 총수들의 비리 및 부정과 천정부지로 오르는 부동산가격 등도 부유층에 대한 불신과 막연한 반감, 계층적 위화감을 사회 전반에 확산시키는 한 원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그러나 `부유층에 대한 적개심'을 범행 동기로 내세우는 이들 범죄인의 피해자가 정작 자신과 경제적인 처지가 비슷한 서민층이나 여성 등 사회적 약자가 대부분으로 범행동기와 상반되는 점도 주목해 볼 만하다. 이와 관련, 범죄심리 전문가들은 자신의 범행을 합리화하는 과정에서 자신에게직접 피해를 주지도 않은 부유층에 대한 적개심을 주장하면서 죄책감을 덜어내고 사회적 동정을 얻으려 하는 심리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부대 경찰행정학과 임상곤 교수는 "부유층에 불만이 있는 소외계층은 막연히보상받고 싶어하는 심리가 있지만 실제 범행을 저지를 때는 강자보다 자신보다 약해보이는 사람을 대상으로 정하고 모든 책임을 부자에게 떠넘기려 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김시업 교수는 "부자에 대한 불만이 최초 동기는 될 수 있어도 연쇄 범행의 주요 동기는 아닐 것"이라며 "이들은 다만 사회에 탓을 돌려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려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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