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UPGRADE 한국의 노사문화] 2-2.정치 리더십은 필수 ① 아일랜드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 국제공항은 신속한 입국심사 절차로 유명하다. 외국인이나 내국인에 대한 차별이 전혀 없다. 대부분 국제공항마다 내국인과 외국인 창구를 별도로 만들어 차별을 두는 것과 달리 각각 1개의 창구만 있다. 물론 외국인의 입국에 대해 간단한 질문만 하고 그 흔한 입국 스탬프도 찍지 않는다. 당연히 줄을 길게 늘어서는 경우는 없다. 이는 아일랜드가 얼마나 외국인 끌어들이기에 열성을 갖고 있는 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로 `서유럽의 환자`에서 `경제성장의 모델`로 거듭난 `비결`이다. ◇정부를 중심으로 이룬`사회적합의`= 아일랜드는 지난 87년 사상 최악의 경제위기에 몰렸다. 유럽의 전반적인 불황에다 산업경쟁력 약화까지 겹치면서 실업률 17%, 국가채무가 국내총생산 GDP의 120%에 달하며 경제파탄위기에 놓였던 것. 아일랜드는 위기를 넘어 새로운 건국을 목표로 경제주체들이 뭉쳤다. 정부를 중심으로 해 노동자단체와 재계가 힘을 합쳐 `사회적 합의(Social Partnership)`를 이끌어낸 것. 노조는 경제성장률을 상회하지 않는 선에서 임금상승률을 요구하기로 하고, 기업과 정부는 근로자들의 삶의 질이 떨어지지 않도록 지속적인 사회보장 강화를 약속하고 세금부담을 줄여주기로 한 것. 이런 밑바탕에는 수십년전부터 미리 준비를 해온 정부의 노력이 있었다. 아일랜드 정부는 71년부터 아일랜드노동조합회의(ICTU), 사용자총연합(Federated Union of Employers) 등을 대상으로 경제발전을 위해 전격적인 합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설득해왔다. 아일랜드 노사정은 87년부터 90년까지 `국가경제회복계획(Programme for National Recoveryㆍ1987~1990년)`, 91~93년 `전국경제계획(National Economic Program), 94~97년에는 `일과 경쟁력을 위한 계획(Program for Competitiveness and Work)` 등 국가 경제 체력 다지기에 적극 협조했다. ◇미래를 내다보는 정부의 결단 = 아일랜드는 1921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후 잇달아 터진 세계대전의 영향에다 농업을 기반으로 한 산업기반이 무너지면서 100만명이 일자리와 생존을 위해 이민에 나선 국가다. 결국 아일랜드가 선택한 길은 외국에 대한 문호개방과 투자유치. 아일랜드 정부는 60년대를 전후해 얼마되지 않는 기업체를 살리기 위한 보호주의를 과감히 떨치고 노조, 기업을 설득해 대대적인 개혁에 나서야 한다는 점을 인지시킨 뒤 차분히 준비를 했다. 61년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하고, 65년에는 영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했으며, 73년에는 유럽연합(EU)에 가장 먼저 가입했다. 적극적인 개방정책은 아일랜드 경제를 살리는 밑거름이 됐다. 아일랜드 이민자가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미국의 투자를 이끌어내는 데 여러모로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김장한 아일랜드 KOTRA관장은 “아일랜드는 EU회원국 가운데서 유일하게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이고, 외국인투자 유치에 적극적”이라면서 “이런 조건들이 미국기업으로부터 투자를 얻는데 크게 기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일랜드가 유로권에서 차지하는 경제적 비중은 1% 수준인데 반해 현재 유럽에 대해 이뤄지는 미국의 투자 가운데 15%가 아일랜드에서 이뤄지고 있다. 아일랜드 정부는 외국인투자기업에게 상환의무가 없는 정부보조금(GRANT)을 지원하고, 법인세를 2010년까지 10%로 감면했으며 무배당세와 투자원금 및 이익금의 본국송금을 보장했다. 여기에다 EU가맹국으로 역내 관세감면 혜택이라는 잇점까지 합쳐지면서 87년 이후 1,230개의 외국기업을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아일랜드 정부의 IDA(아일랜드 산업개발청)는 외국인투자를 전담하고 있다. 이 기관은 외국인기업의 법인 등록 및 법률적 자문 변호사 선임, 회계사, 건설 담당 엔지니어링 회사, 공장설립 및 건설공사 인ㆍ허가 업무 등을 직접 주선ㆍ마무리해 준다. ◇세계화 1등 국가 = `그린 타이거`는 유럽에서 아일랜드를 가리키는 애칭이다. 세계가 한국, 싱가포르 등 아시아 4국을 떠오르는 용으로 비유해, 아시아에 4마리 용이 있다면 유럽에는 호랑이가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아일랜드는 현재 실업률 3.9%로 사상 최저수준이자 유럽에서 가장 낮다. 또 1인당 국민소득은 3만달러, 최근 5년간 평균 경제성장률 9%로 다른 유럽국가의 3배를 자랑하는 모범 경제성장국가로 이름을 높이고 있다. 미국의 외교저널인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는 2003년 1~2월호에서 세계 62개국을 대상으로 세계화 수준을 조사한 결과 아일랜드가 국제경제활동, 자본이동, 개인의 국제화, 해외직접투자, 교역 등에서 탁월한 평가를 받으며 2년 연속 1등을 차지했다. 아일랜드에서 외국인 기업들은 고용효과 연 10만명, 상품수출의 70%를 차지하고 있어 국가경제의 주축을 이루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다. 특히 하이테크, IT 기술관련 투자유치 노력은 대단하다. 현재 IT산업이 아일랜드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0%에 이르고, IBMㆍ애플ㆍ델 등 세계적인 회사들의 투자에 힘입어 유럽 IT강국으로 일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아일랜드 정부는 이에 따라 다국적기업들에게 필요한 우수한 인력을 충분히 공급하기 위해 15개의 기술학교와 8개의 종합학교를 세워 젊은 인재들을 철저히 교육시켜 우수 인력들을 계속 배출시키고 있다. 90년대초부터 아일랜드에서 거주한 교민 박지원씨는 “아일랜드 정부가 이미 10여년전부터 자국민은 물론이고 유학중인 외국인들에게도 IT교육을 무료로 개방하며 열을 올리는 등 미래를 준비해왔다”고 밝혔다. 아일랜드의 안정적인 노사관계는 세계적인 정보기술(IT) 기업들을 끌어들이는 동인이 했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아일랜드 사우스 카운티 비즈니스 파크에 소프트웨어 개발센터를 짓고 있다. "노사관게 노하우 해외수출도 해요" “노사관계 노하우도 수출한다.” 지난 90년 더블린 중심가에 설립한 아일랜드 노사관계위원회(LRCㆍLabour Relations Commission)는 노사관계를 총괄하는 기관이다. 래리 오그래디 LRC 연구ㆍ정보 책임자는 “아일랜드의 경우 공공부문을 제외하고는 민간 부문에서 노조 결성률도 매우 낮다”면서 “특히 IT기업의 경우 다른 부문보다 임금과 노동조건이 좋아 노조가 거의 없으며, 노사분규 역시 전무하다”고 말했다. 아일랜드에서는 노사 갈등 가운데 LRC의 중재로 인해 85%가 해결되고, 15% 정도만 노동법원으로 넘어간다. LRC의 활발한 중재역할로 인해 이웃하고 있는 노동법원에서는 `할 일이 없다`는 우스개 소리가 나올 정도다. 실제로 노사분규는 공공부문에서만 일어나고 있으며, 실제 발생건수도 90년 49건에서 2000년 39건, 지난해에는 26건으로 그 수도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파업손실일수도 90년 223일, 2000년 97일로 대폭 감소했다. 신성현 새한미디어 아일랜드 법인장은 “아일랜드 정부의 강력한 투자유치정책 때문에 아일랜드에 현지법인을 설립하기로 결정했다”며 “특히 국민성이 온순해 노사관계가 비교적 원만한 것도 주요한 투자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새한미디어는 현재 261명에 달하는 현지 인력을 운용하고 있으나, 추가로 수십명을 뽑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IRC는 또 개별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권리보호서비스(Rights Commission Service)`를 통해 저임금, 차별문제를 해결해주고 있다. 무료로 필요한 법적자문은 물론 변호사까지 지원하고 있어 국민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기업들도 대부분 IRC의 결정을 수긍, 노사갈등을 최소화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LRC는 40명의 직원이 약 380만명에 달하는 아일랜드 국민들을 대상으로 서비스하고 있다. 1명당 10만명을 맡고 있는 셈이다. 아일랜드의 노사관계 노하우는 이제 해외로 수출까지 되고 있다. 오그래디는 “곧 모로코를 방문해 노사관계를 다루는 방법에 대해 설명한다”면서 “이미 러시아, 헝가리, 불가리아 등 다른 동유럽국가들이 여러 채널을 통해 아일랜드식 노사관계 비결을 배우고 있으며 이탈리아와 싱가포르 등 선진경제국가들도 대표단을 파견해 아일랜드식 비결을 알아내기 위해 아일랜드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아일랜드판 경제단체 IBEC "경제성공 낙과일러 사회적합의 유지필요" “아직까지 경제적 성공을 말하기는 이르다.” 아일랜드의 경제인연합단체인 IBEC(Irish Business and Employers Confederation)를 대표하는 이코노미스트인 데이비드 크로건 박사는 “아일랜드가 87년 이후 15년간 사회적합의가 비교적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내년이후 향방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15년간 이뤄낸 경제성장의 결과 최근 들어 임금상승 욕구와 이어지면서 사회적합의의 정신이 자칫 훼손될 가능성을 경고한 것. 정부가 제시한 임금상승률은 5%인데 반해 노동단체들은 6%이상을 요구하고 있는 등 임금상승에 대한 요구가 강해지는 것을 경계하는 발언이다. 경제성장으로 인해 물가상승률이 2000년에 5.6%, 2001년에 4.9% 등 5%대를 넘나드는 등 인플레이션 가능성이 나타나고 있지만, 경제활력 유지를 위해 노조의 양보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크로건 박사는 “정부가 경제성장의 흐름을 지속적으로 끌고 나가고 외국인투자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통신, 주택, 도로 등 인프라에 대한 추가적인 투자가 필수”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90년대들어 외국인과 아일랜드를 떠났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면서 주택 가격이 무려 2~3배 뛰고, 신차 등록수도 3배나 늘어나면서 교통체증을 보이는 등 외국인투자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가 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IBEC는 2003년부터 3년간 아일랜드 경제를 건실하게 끌고 나가기 위해 주요한 역할을 한 `사회적합의`에 최선의 내용을 담을 수 있도록 노력을 다한다는 방침이다. 이른바 어렵게 일구어낸 성장의 결과를 수포로 돌아가게 만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초심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고언이다. <특별취재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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