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에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내용이 있어 (기초연금법 통과와 6·4지방선거를 앞둔) 지금 공개하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2개월 미룹시다." 한국 정부 당국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2014 한국경제보고서' 공개를 선거 뒤로 미루자고 강하게 요청했다. 그러잖아도 보고서 초안에서 정부와 의견이 크게 엇갈리는 부분을 빼거나 권고의 핵심 취지만 담는 쪽으로 수정했지만 그마저도 4~5월에 공개하는 것이 무척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보고서 수정에서 공개에 이르기까지 양측의 조율 과정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지만 대체적인 전말은 이렇다.
결국 최종 보고서는 OECD 경제발전검토위원회(EDRC)가 4월18일 승인한 지 2개월 뒤인 이달 17일에야 OECD와 한국에서 동시에 공개됐다. 공개를 늦춘 가장 큰 이유는 야당과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초연금법 처리에 매달려왔는데 OECD가 정부안에 매우 비판적인 권고안을 냈기 때문이다. OECD는 65세 이상 노인의 70%에게 주는 준(準)보편적 기초연금에 대해 "절대빈곤 노인의 빈곤 완화 효과가 떨어진다"며 최저소득 노인층이 절대적 빈곤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데 집중할 것을 권고했다. 30~50% 안팎을 차지하는 절대적·상대적 빈곤노인(전체 인구 중위소득의 40~50%에 미달)을 집중 지원해야 OECD 회원국 평균의 4배에 이르는 노인빈곤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초연금법 처리에 목매던 정부여당 입장에선 악재일 수밖에 없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새정치민주연합을 '불효 정당'이라며 비난하던 시기였으니 더 말할 것도 없다. 물론 여야가 더 많은 노인에게 더 많은 연금을 주자며 포퓰리즘 경쟁을 하는 상황이었기에 OECD의 권고가 미치는 영향력은 제한적일 수 있다. 한국이 주권국가인 만큼 OECD의 권고를 수용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정부가 제출한 기초연금법안 처리와 선거에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해서 공개를 미룬 것은 매우 부적절한 처사다. 정보의 원활한 소통을 가로막아 국민과 정치권의 합리적 판단을 가로막는 비민주적인 '공작정치'일 뿐이다. 제때 공개했으면 OECD가 왜 그런 권고를 했는지, 기초연금의 재정적 지속가능성과 빈곤 완화 효과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 생각해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랬더라면 지급대상을 노인인구의 70%로 못 박은 기초연금의 가장 큰 맹점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보다 많아졌을 것이다.
OECD가 국민연금 재정안정을 위해 현재 9%인 보험료를 14.1%로 하루빨리 올릴 것을 권고한 것도 박근혜 정부엔 뼈아플 것이다. 국민연금의 노인빈곤 개선 효과를 높일 필요가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둘 다 정부가 기초연금법 등 처리에 매달리느라, 정치·재정적으로 부담스럽다며 차기 정부로 미루는 등 소극적으로 대응한 사안이다. 선진국이 생산가능인구의 80~100%가 국민연금 보험료를 낼 때 우리는 43%만 내는데도 말이다. 자영업자, 비정규직, 영세 중소기업 근로자 등 국민연금 사각지대는 여전히 넓다. 퇴직금·기업연금 사각지대와도 겹친다. 이런 상황을 방치하면 노후빈곤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보다 많은 사람이 보험료를 납부할 수 있는 보험료 지원체계를 갖추는 게 시급하다. 그게 일하는 복지로 이행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OECD는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이 부담스러우니 세금을 거둬 연금지급 재원으로 쓰자는 주장이 한국 사회에서 힘을 키워가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연금 재원을 일반 세수에 의존할 경우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못한 영세 자영업자, 비정규직, 중소기업 근로자 등의 소득·세금이 고소득자 등에게 이전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정부여당은 당장 먹기에 쓰더라도 OECD의 권고라는 좋은 약을 피해선 안 될 것이다.
/임웅재 논설위원 jaeli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