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서남표 총장의 눈물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이 결국 눈물을 보였다. 지난 12일 열린 국회 교과위 회의에서 의원들이 이구동성으로 학생들의 잇따른 자살문제를 질타하자 눈시울을 붉혔다. 의원들은 학생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징벌적 수업료 납부제도와 100% 영어수업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런 사태를 만든 서 총장이 책임을 지고 사퇴 해야 한다고 몰아붙였다. 국회의원들로서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지적들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교육개혁을 이끌고 있는 원로 학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범법자를 대하듯 고압적인 자세로 일관했다. 어떤 의원은 학점 평점과 고스톱 점수를 비교하며 4,000만이 하는 고스톱도 모르냐며 비웃었다. 어떤 의원은 교육의 의미를 묻고 그것을 영어로 말해 보라며 조롱했다. 평생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학자로 살아 온 서 총장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모였을 것이다. 서 총장이 흘린 눈물은 이런 굴욕감과 실패한 개혁이라는 낙인 때문이었을 것이다. 서 총장은 이 자리에서 징벌적 수업료 납부제도를 철폐하고 100% 영어수업도 선택적으로 적용키로 했다고 말했다. 서 총장은 개혁 이전으로 돌아갈 것을 선언하면서도 사퇴는 거부했다. 서 총장은 다음 날인 13일 “카이스트 개혁을 정리한 뒤 떠나는 게 낫다”는 말로 상황수습 뒤 사퇴할 뜻을 비췄다. 문제는 이번 카이스트 사태를 이용해 이득을 취하려는 움직임들이다. 물론 서 총장의 무한경쟁 정책은 의도와 달리 부작용이 만만치 않았다. 학생들은 듣고 싶은 과목보다 점수 따기 쉬운 과목으로 몰렸다. 창의성을 키우는 것은 시간표 밖의 일이 됐다. 학생들은 교정에 쏟아지는 따스한 봄볕과 화사하게 핀 벚꽃에 취할 잠깐의 여유도 없었다. 그렇다고 서 총장의 무한경쟁 정책이 비난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13일 열린 비상 총학에서 서 총장의 개혁을 실패로 규정하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카이스트는 앞으로 교수와 학생들이 참여하는 혁신비상위원회가 여러 가지 개선방안을 만들어 학교정상화에 나설 것이다. 우려스러운 것은 교수나 학생 모두 개선방안의 초점을 경쟁완화에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정말 경쟁완화가 최선의 선택인가 고민해 봐야 한다. 카이스트 학생들은 우리나라 입시경쟁체제의 최대 수혜자들이다. 그들은 경쟁에서 이긴 대가로 연간 1,000만원이나 되는 수업료 걱정 없이 학업에만 전념하면 되는 위치에 섰다. 그들은 이 같은 결과를 가져온 고교시절 경쟁에 대해서는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이제 와서 경쟁이 싫다는 것은 정당성이 없다. 카이스트 학생들은 세계 유수 대학의 학생들과 경쟁 해야 한다. 대한민국 대표선수로서 글로벌 무대에서 역량을 보여줘야 한다. 국가가 이들을 지원하는 이유다. 그런데 지금 보다 학업량을 줄이고도 가능할 지 의문이다. “그 무엇도 공짜로 얻을 수는 없다”는 서 총장의 말은 틀리지 않다. 교수들과 총학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징벌적 수업료 납부제도 철폐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국민들이 많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대에서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는 것은 잘못이라는 생각이다. 이번 카이스트 사태의 원인이 무한경쟁이고 그래서 경쟁을 완화해야 한다는 처방은 위험하다. 경쟁이 사라진다면 카이스트는 세계 최고를 지향하는 대학에서 대한민국의 똑똑한 학생들이 다니는 여러 대학 중 하나로 바뀔 수 밖에 없다. 경쟁은 진화의 역사이자, 인류발전의 원동력이다. 경쟁은 생존과 발전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진화의 역사에서 찾아낸 가장 효율적 수단이다. 서남표 없는 카이스트는 존재할 수 있지만, 경쟁없는 카이스트는 생각할 수 없다. 카이스트는 서남표의 눈물을 먹고 자라야 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