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수임료와 부실회계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중심에는 왜곡된 시장구조가 자리잡고 있다. 회계법인은 철저히 독립적인 위치에서 기업감시자라는 역할을 해야한다. 하지만 감사인 선임과 수임료 지급을 기업이 하는 현 구조에서는 이를 기대하기 힘들다. 대형사 4곳이 과점체제를 형성하고 나머지가 시장의 50%를 놓고 이전투구를 벌이는 현실 역시 기업이 입맛에 맞는 감사인을 고를 수 있는 조건을 형성했다. 시장감시자가 오히려 눈치를 살피는 기막힌 일이 벌어진 셈이다.
뒤바뀐 갑을관계에서 회계법인의 역할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감사에 필요한 자료제출 요구에 회사가 비협조적으로 나와도 항의할 처지가 못된다. 감사인 교체 시즌이면 자리 유지를 위해 자세를 더 낮춰야 한다. 회계법인 변경 후 수임료가 평균 7.8%나 줄어든다는 금융감독원의 설문 결과가 당연할 수밖에 없다. 제대로 감시를 한다는 게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부실감사의 피해는 해당 기업 투자자로만 그치는 게 아니다. 자본시장에 대한 불신으로 퍼져 우리 경제를 송두리째 뒤흔들 수 있다. 무엇보다 거꾸로 된 기업과 회계법인의 관계를 제자리로 돌려놓는 게 우선돼야 한다. 현재의 자유경쟁 체제 대신 감사인지정제를 확대하고 자산규모별 최소보수 기준을 마련해 헐값수임을 막고 회계부정 가능성을 차단하는 방안도 고려해봄 직하다. 자본시장이 돌이킬 수 없는 비극에 빠지기 전에 기업 회계쇼핑을 막을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