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갱' 양산과 개인정보 유출 모두 보조금 과당 경쟁 때문입니다. 비정상적 시장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단말기와 통신 서비스 유통시장을 분리해나가야 합니다."
이동통신 3사의 불법 보조금 경쟁과 개인정보 유출로 이통시장의 혼란이 극에 달하고 있다.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과 과징금의 요금감면 전환 등 관련 정책이 쏟아지고 있지만 근본 해결책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장기적으로 단말기와 통신 서비스가 밀접하게 결합된 현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12일 업계와 전문가들은 이통사의 개인정보 유출이 과당경쟁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11일 부산 남부경찰서가 발표한 개인정보 유출 사건도 이통사 본사가 아닌 판매점에서 발생했다. 판매점 간 가입자 유치경쟁이 과열돼 고객의 개인정보 자체가 시장 가격을 형성하면서 이 같은 사고가 발생했다는 이야기다. 통상 2년의 가입 기간을 감안해 고객정보에 담긴 단말기 교체 시기를 파악하면 훨씬 효율적인 영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휴대폰 보조금은 단말기 제조사와 이통사가 지급하는 리베이트(판매 장려금)로 결정되는데 판매점은 리베이트 가운데 일부를 이윤으로 남기고 나머지를 가입자들에게 지급한다. 고객을 많이 유치하면 별도의 수당까지 더해진다. 과열경쟁이 빈번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또 이통사 고객의 개인정보는 카드나 보험 등의 업종과는 내용이 다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포화상태의 시장에서 단순한 가입자 뺏기 이외에 별다른 마케팅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한 사업자가 치고 나가면 다른 사업자들이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구조가 고착화된 것이다. 가입자 증가가 영업이익과 통신망 가치 상승에 직결되고 과거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도입 과정에서 대리점이 경제적으로 이통사에 전적으로 기대는 시장 환경이 형성된 것도 문제다.
그렇다면 해법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유통구조 분리를 통해 예측 가능한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징금과 영업정지라는 일회성 처방에 의존하기보다 제조사 중심의 단말기와 이통사의 통신 서비스로 유통시장을 투명하게 분리해 소비자의 선택을 도와야 한다는 논리다. 이태희 국민대 교수는 "단말기와 통신 서비스 시장의 분리를 추진해 각자의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그래야 요금과 가격 위주의 시장논리가 형성된다"고 말했다. 강병민 경희대 교수도 "단말기를 잘 팔리게 하는 역할을 이통사가 하고 있다는 것만 봐도 시장이 비정상적이라는 것"이라며 "투명성을 전제로 유통질서를 건전화시키는 노력을 정부와 사업자 모두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한석현 YMCA 시민중계실 간사는 "기본적으로 단말기 가격이 현실적으로 재조정돼야 하고 소비자들이 눈치를 보지 않도록 단말기 출고가와 통신 서비스 요금제를 명확하게 확정해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외에 10년 넘게 이어온 이통3사의 적대적 공생관계를 깨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은 지난해 말 '통신시장 경쟁상황 평가 보고서'를 통해 "다양하고 저렴한 서비스 제공을 촉진할 수 있는 유연한 요금정책 등은 5·3·2로 고착화된 시장 점유율이 변해야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10년 넘게 유지된 이통 3사의 독과점 아래에서는 혁신적인 요금제나 서비스가 등장할 만한 유인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또 정부 주도의 요금인가제 해소를 통한 자율적 요금경쟁을 유도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미국·영국·스페인 등 선진국의 경우 보조금 제도를 폐지하는 대신 요금제 중심의 유통 모델을 만들어가는 추세다. KT경제경영연구소에 따르면 글로벌 통신사 30개사의 수익성을 분석한 결과 지난 2011년 매출 대비 보조금이 14%에서 2012년 18%로 증가한 반면 수익성은 35%에서 33%로 감소했다. 때문에 글로벌 통신사들은 보조금 경쟁을 벗어나 단말기 할부금이나 월별 요금 할인을 더 해주는 방식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스마트폰 출시 이후 단말기 가격 상승이 보조금 상승으로 이어지고 이는 곧 수익성 악화로 귀결되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다양한 대책이 정부와 연구기관들에 의해 제시되고 있지만 단기 대책이라는 지적이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이날 불법 보조금 징계에 따른 과징금을 요금감면으로 돌려 이용자 편익을 도모하겠다고 밝혔고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는 2015년까지 모든 유통점의 인증획득을 목표로 하는 '통신시장 유통점 인증제'를 사업자들과 공동 추진하기로 했다. 다만 두 방안 모두 단기처방으로서 실효성은 넘어야 할 과제다. 미래부 요금감면은 영구적 감면이 아니고 수천만명의 가입자 수를 고려하면 개개인별 혜택은 미미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유통점 인증제는 시장 참여를 희망하는 이들의 발목을 잡아 시장경제 논리에 어긋날 수 있다는 점이 논란이 될 수 있다.